2026년 08월 31일(월)

폴란드·핀란드 찍고 스페인까지... 한화에어로, K9 자주초포 'EU 장벽' 뚫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방산 베스트셀러'로 불리는 K9 자주포로 처음으로 서유럽 시장 문을 열었다. 동유럽과 북유럽에 이어 스페인까지 수출 영토를 확장하며 유럽 전역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스페인 방산기업 인드라와 최근 K9 자주포 수출 실행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경영상 비밀유지를 이유로 공식 발표되지 않았으나 66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계약은 스페인이 추진 중인 대규모 자주포 현대화 사업의 첫 단추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K9 자주포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스페인 육군은 약 45억5400만유로(한화 약 7조2500억원) 규모의 자주포 현대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궤도형 자주포 128문과 차륜형 자주포 86문, 탄약보급차량 214대를 들여오는 대형 프로젝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일찍부터 현지 파트너십을 구축해왔다. 지난 3월 인드라와 스페인 자주포 현대화 사업을 위한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를 맺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플랫폼과 관련 기술을 제공하고, 인드라가 스페인 현지에서 차체와 제어·통신 시스템을 제작하는 구조다.


지난 7월 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년도 매출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상품 공급 기본계약 체결 사실을 공시했으나, 당시에는 계약 상대와 사업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이번 실행계약으로 해당 사업이 스페인 K9 프로젝트였음이 확인됐다.


스페인 진출은 K9의 유럽 시장 지도를 한층 넓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K9은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서 연이어 수출 성과를 거뒀다. 전통적인 방산 강국들이 모인 서유럽 국가인 스페인이 새 고객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활동 범위가 유럽 전역으로 넓어지는 양상이다.


이번 계약에서는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 유럽 각국이 국방비를 급속도로 늘리면서도 자국과 유럽 방위산업에 생산과 투자를 남기려는 조달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한국에서 만든 무기를 그대로 수출하는 방식만으로는 유럽 시장을 오래 공략하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K-9 자주포 / 뉴스1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인드라와 협력해 K9 기술을 바탕으로 스페인 현지 생산과 산업 참여가 가능한 틀을 만들었다. K9의 성능은 물론 현지 기업과 생산·기술 생태계를 함께 키우는 방식으로 유럽 시장 변화에 대응한 모양새다.


이런 전략은 최근 루마니아 보병전투장갑차 사업에서 겪은 아쉬움과 대조를 이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호주에서 성능을 인정받은 AS21 '레드백'으로 루마니아 사업에 도전했으나, 독일 라인메탈의 KF41 '링스'에 밀렸다. 당시 한화 측은 높은 수준의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방안을 내놨지만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유럽 방산 시장에서는 가격과 성능뿐 아니라 현지 산업 기반과 기존 공급망, 정치·안보적 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게 드러났다. 스페인에서 현지 대표 방산기업 인드라와 손잡고 사업 구조를 짠 것은 앞으로 서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K9의 글로벌 확장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미국 육군의 신형 기동전술화포 사업에서 차륜형 K9 'K9MH'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땄다. 미국 시장에서 K9 계열 자주포가 실제 평가 단계에 오른 첫 사례다.


K9 차륜형 자주포(K9MH)가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에서 사격 시험을 하고 있다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스페인까지 더해지며 K9은 기존 동·북유럽 시장을 넘어 서유럽과 미국이라는 대형 방산시장으로 진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다음 타깃도 남아 있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전력 현대화를 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추가 도입 가능성이 있는 인도·폴란드 등을 K9의 주요 수주 후보로 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스페인에서 확보한 교두보를 바탕으로 K9의 유럽 영토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