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31일(월)

한강 소설부터 김치전까지...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사로잡은 K-문화

프랑스 남부 소도시 아비뇽의 여름밤,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한국 배우 이혜영과 프랑스 영화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함께 낭독했다.


세계 3대 공연예술 축제로 꼽히는 '아비뇽 페스티벌'이 창설 80년 만에 처음으로 아시아 언어인 한국어를 '올해의 초청 언어'로 선정한 결과다. 한국 공연예술이 유럽 예술계의 중심 무대에 당당히 섰다.


올해 80회를 맞은 아비뇽 페스티벌은 매년 7월 프랑스 아비뇽 전역을 거대한 공연장으로 만드는 행사다. 1947년 시작된 이 축제는 칸 영화제, 베니스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예술계가 주목하는 문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올해 축제는 특별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가운데)이 배우 이혜영(왼쪽),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궁전(Palais des Papes) 명예의 뜰(Cour d’honneur)에서 열린 낭독 공연 ‘새’(Oiseau)를 마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6.7.16/뉴스1


아시아 언어 최초로 한국어가 공식 초청되면서 한국 작품 9편이 무대에 올랐다. 현대무용부터 연극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공연이 펼쳐졌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낭독극 무대에서 배우 이혜영은 "눈이니? 좀 많이 올 것 같다. 이상하다. 이렇게 너하고 같이 눈을 보니까"라는 대사를 한국어로 전했다.


프랑스 관객들은 자막을 읽으며 한국어 특유의 리듬과 감정을 동시에 접했다.


YTN에 따르면 관객 라이아 아티에 루브탱은 "프랑스어 자막을 읽으면서 동시에 한국어 발음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며 "이야기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소설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티아구 호드리게스 아비뇽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한국어 선정 이유를 명확히 밝혔다. "아비뇽 페스티벌이 한국어를 초청한 첫 번째 이유는 한국어가 지닌 아름다움과 풍부함 때문"이라며 "한국의 공연예술을 재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궁전(Palais des Papes) 명예의 뜰(Cour d’honneur)에서 관객들이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낭독 공연 ‘새’(Oiseau)를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6.7.16/뉴스1


실제로 축제 기간 한국 공연에는 2만 1천여 명의 관객이 찾았다. 대부분의 공연이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일어나 박수를 보내는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한국 동포의 이주 이야기를 다룬 연극 '하리보 김치' 공연장에서는 극 중 등장한 김치전과 오이 냉국을 관객들에게 제공했다. 작품 속 음식을 직접 맛보며 공연의 여운을 느끼도록 한 시도였다.


축제 현장 곳곳에서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한국 전통 음식을 맛보고 공연에 담긴 한국의 역사와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공연과 체험이 결합된 이 같은 방식은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한국 문화 전반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1947년 연출가 장 빌라르가 교황청 별궁에서 소규모 공연을 올리며 시작됐다. 이후 매년 7월이면 인구 9만 명의 작은 도시가 전 세계 공연예술인과 관객이 모이는 거대한 무대로 변신한다.


공식 프로그램인 '인(IN)' 섹션과 비공식 프로그램인 '오프(OFF)' 섹션을 합쳐 매년 1천여 개가 넘는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전 세계에서 온 관객 수는 매년 10만 명을 웃돈다.


아비뇽 교황청 궁전 / 뉴스1


한국은 지난 2013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처음 공식 초청을 받았다. 당시 연출가 양정웅의 '햄릿'이 무대에 올라 호평을 받았다.


이후 한국 작품들이 꾸준히 축제에 초청되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올해 한국어가 '올해의 초청 언어'로 선정된 것은 그간 쌓아온 성과가 인정받은 결과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매년 특정 언어와 문화를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아시아 언어가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공연예술계는 이번 성과를 발판 삼아 유럽 시장 진출을 확대할 전망이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유럽 공연예술계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행사다. 축제 기간 전 세계 공연장 관계자, 제작자, 비평가들이 모여 작품을 보고 평가한다.


한국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 유럽 각국 공연장으로 초청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과거 아비뇽에서 호평받은 한국 작품들은 이후 프랑스, 독일, 영국 등지에서 재공연 기회를 얻었다.


프랑스 남부의 여름밤을 한국의 색채로 채운 아비뇽 페스티벌. 한국어와 한국 공연예술은 80년 역사의 세계적 축제 무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언어와 국경을 넘어 감동을 전한 한국 작품들은 세계 예술계에 한국 문화의 깊이와 가능성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