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항소심서 김옥숙 '선경 300억' 메모 제출...노태우 자금, 재산형성 기여 주장
대법원은 기여분서 배제...檢, 김옥숙 자택·노재헌 관련 재단 압수수색하며 자금 추적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 기여를 주장하며 제출한 모친 김옥숙 여사의 '선경 300억' 메모가 2년여 만에 노태우 일가를 겨냥한 검찰 강제수사의 확인 대상에 올랐다.
노 관장 측은 2023년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선경건설(SK에코플랜트 전신) 명의 약속어음과 김 여사가 1998년과 1999년 작성한 메모를 증거로 제출했다. 메모에는 '선경 300억원'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故 최종현 SK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전달했고 이 자금이 당시 선경그룹의 경영활동에 사용됐다는 게 노 관장 측 주장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를 인정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은 300억원의 실제 존재나 SK 측 전달 여부 자체를 판단하지 않은 채, 원심 판단대로 지원이 있었다고 보더라도 불법자금인 만큼 노 관장의 재산분할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파기환송심에서도 300억원은 노 관장의 기여분에서 제외됐다. 검찰은 이혼소송을 통해 밖으로 나온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의혹을 별도로 수사해왔고 21일 처음으로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이날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과 조세포탈 혐의 등과 관련해 김 여사가 머무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 등을 압수수색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주중한국대사가 각각 이사장과 상임이사로 관여하는 동아시아문화재단과 '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검찰은 이들 재단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 일가에 차명계좌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당시 비서관들의 자택에도 강제수사가 이뤄졌다.
재산분할 근거로 꺼낸 '선경 300억'...노소영도 고발 대상
'선경 300억'이 처음 법정 밖으로 나온 건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과정이었다.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메모에는 '선경 300억원'을 비롯해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 내역이 적혀 있었다. 김 여사는 '선경 300'이라는 문구가 적힌 봉투에 액면가 50억원짜리 선경건설 명의 약속어음 6장도 보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관장 측은 이를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이 1991년 선대회장에게 비자금 300억원을 건넸고 선대회장이 선경건설 명의 약속어음을 담보로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 돈이 태평양증권 인수와 당시 선경그룹 경영활동에 사용됐다는 주장도 폈다.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비자금 300억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활동비를 요구할 경우 지급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며 메모만으로 실제 자금 전달을 입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2024년 5월 항소심 재판부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300억원이 SK그룹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보고 이를 재산 형성 과정에서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내렸다.
이혼소송에서 메모가 공개된 이후 법정 밖에서도 비자금 문제가 불거졌다.
5·18기념재단은 2024년 김 여사와 노 관장, 노재헌 대사 등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재단은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은닉한 비자금 규모가 1266억원대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별도로 같은 해 9월에는 '선경 300억원' 메모와 관련해 노 관장과 최 회장 등을 수사해달라는 고발장도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됐다.
검찰은 고발인 조사에 이어 김 여사 측에 자금 흐름에 대한 소명을 요구하고 노 전 대통령 일가의 금융계좌 자료를 확보했다. 현재의 자금 흐름을 기준으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은닉·승계 과정을 추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 관장이 재산분할 과정에서 자신의 기여를 뒷받침하기 위해 법원에 제출했던 김 여사의 메모도 검찰의 확인 대상이 됐다. 재산분할액을 늘리기 위한 근거로 제출된 자료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조성과 은닉 여부를 확인하는 수사 자료로 이어진 것이다.
대법원서 기여 인정 막힌 300억...실제 SK 유입 여부는 여전히 미확인
이혼소송에서 300억원을 둘러싼 판단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실제 전달했는지를 판단하지 않았다. 원심이 인정한 것처럼 지원이 있었다고 보더라도 자금 출처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받은 뇌물로 보이는 만큼 이를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해당 자금에 대해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하다며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에서의 기여를 포함해 어떠한 형태로도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달 24일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300억원을 노 관장의 기여분에서 제외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혼인 당시 보유자산과 공동재산 취득 경위, 혼인 기간 등을 다시 따져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3분의 2, 노 관장 3분의 1로 정했다. 최 회장이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금은 9440억원으로 산정했다.
다만 이 판결도 확정되지 않았다. 최 회장 측은 지난 14일 파기환송심 판결에 불복해 재상고했다. 이에 따라 2017년 시작된 두 사람의 재산분할 소송은 다시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이혼소송에서 300억원이 재산분할 기여에서 빠진 것과 별개로 검찰은 해당 자금의 실체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300억원의 실제 SK 측 유입 여부는 과거 수사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1995년 태평양증권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최종현 선대회장을 조사했지만 자금 출처를 노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추징금 2628억원에도 해당 300억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서 확인해야 할 대상도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실제 300억원을 전달했는지, 해당 자금이 범죄수익에 해당하는지, 이후 노 전 대통령 일가를 거쳐 어떤 형태로 이동했는지다.
강제수사 전날인 20일에는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국외도피·소재불명 등으로 기소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범죄수익임이 확인되면 법원이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른바 '독립몰수제'로 법안은 공포 후 1년 뒤 시행된다.
범죄수익 은닉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검찰은 이날 김 여사 자택과 노재헌 대사 관련 재단, 전직 비서관 자택 등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1991년 300억원 전달 주장 이후 자금의 이동 경로와 최근까지 이어진 은닉·승계 행위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