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거리에 분홍색 버스가 나타났다. 운전대를 잡은 이도, 차장도, 탑승객도 모두 여성이다. 방글라데시 도로교통공사(BRTC)가 여성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여성 전용 버스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19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매체 다카트리뷴, The Daily Star 등의 보도에 따르면 BRTC는 수도 다카와 남동부 항구도시 치타공, 북부 보그라에서 분홍색 여성 전용 버스 14대의 정규 운행을 개시했다. 다카와 인근 지역에 10대, 치타공에 2대, 보그라에 2대가 배치됐으며 세 도시를 아우르는 13개 노선을 운행한다.
운행 시간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요금은 일반 버스와 동일하게 ㎞당 2.23타카(약 25원)로 책정됐다.
14대 전 차량에는 위치 추적 장치가 설치됐고, 일부 차량은 폐쇄회로(CC)TV와 와이파이를 갖췄다. 승객들은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통해 미리 표를 구매할 수 있다.
압둘 라티프 몰라 BRTC 회장은 "여성을 위해 이 사업을 시작한다"며 여성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남성 중심의 운송 분야에 여성 일자리를 확대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방글라데시 여성들은 그동안 붐비는 버스와 정류장에서 무단 접촉과 언어폭력에 시달려왔다. 유엔개발계획(UNDP) 방글라데시 사무소와 국가인권위원회(NHRC) 등이 지난 2022년 24개 주 여성 5187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살면서 한 번 이상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했다. 36%는 버스와 기차, 선박과 터미널에서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겪는다고 했고, 57%는 대중교통을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꼽았다.
가해자 중 상당수는 운수 종사자였다. 현지 여성단체가 지난 2022년 다카에서 13~35세 여성 805명을 조사한 결과, 대중교통에서 성희롱당한 응답자의 20.4%가 버스 기사나 차장 등 운수 종사자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75%는 다른 승객이었다.
다만 첫날 운행은 순탄하지 않았다. 승객이 좀처럼 타지 않은 것이다. 모스타킴 부이야 BRTC 홍보담당관은 현지 매체 TOB에 "운행 첫날이라 기사들도 새 노선과 배차, 실제 교통 상황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며 "승객들도 언제 어디서 버스가 다니는지 알아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느 정도 운행이 쌓여야 운행 횟수와 승객 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방글라데시에서 여성 전용 버스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BRTC는 지난 1998년 이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고 2001년 다카 일대로 확대했으나 얼마 못 가 사업을 중단했다.
지난 2009년 재개했지만 2015년 완전히 멈춰 섰다. 2018년에는 민간 기업과 협력해 별도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 사업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셰이크 라비울 알람 도로교통교량부 장관은 출범식에서 여성용 전기버스 100대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3개월 안에 50대를 도입하고 나머지는 6개월 안에 단계적으로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대중교통을 현대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정부 관계자는 "버스 안에서만 안전이 확보돼서는 부족하다"며 "타고 내리는 과정과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업은 정부의 총선 공약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추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