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주요 산유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에 대비해 한국과 일본 내 원유 저장량을 대폭 늘리려 하고 있다. 중동 중심의 원유 공급망을 동아시아로 확대해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일본 정부에 현재 각각 약 800만배럴 수준인 일본 내 원유 비축량을 최대 10배까지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양국은 한국 정부와도 비축량 확대를 위한 비슷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와 UAE가 해외 비축 확대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역시 단기간 내 정상화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는 판단에서다. 양국이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는 육상 송유관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한 수출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주요 소비시장인 동아시아에 원유를 사전 저장해두면 해상 운송에 차질이 생겨도 고객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중동 산유국들의 계산이다. 한국과 일본 역시 중동산 원유를 자국 내에 추가 확보함으로써 공급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사우디와 UAE가 요구하는 물량은 일본의 현재 저장 능력을 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 산유국에게 저장 공간을 더 제공하면 일본 정유업체의 상업용 재고와 국가 전략비축유를 보관할 공간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저장 규모와 비용 분담 방식을 두고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중동 산유국들의 해외 원유 저장기지 기능을 수행해왔다. UAE는 2009년, 사우디 아람코는 2010년, 쿠웨이트는 2020년부터 일본에 원유를 저장하고 있다.
현재 사우디와 UAE가 각각 약 800만배럴씩, 쿠웨이트가 약 300만배럴을 비축 중이다. 일본은 전쟁 초기 이 가운데 일부를 실제로 활용한 바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란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중동 산유국들은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송유관 확대에 나서고 있고, 아시아 수입국들은 중동 외 지역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확보에 나서는 동시에 자체 비축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