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고로 재산분할액 다시 대법원 판단
SK실트론 29.4% 단순 환산가 9500억대
실제 처분 땐 TRS 정산 변수...SK㈜ 오버행 우려 낮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이 다시 대법원으로 향했다. 최 회장이 지난 14일 재상고하면서 파기환송심이 정한 재산분할액 9440억원도 확정되지 않게 됐다. 재상고심 결과는 쉽게 예단하기 어렵지만, 숫자가 바뀔 길은 열렸다.
다만 9440억원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최 회장이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SK㈜ 지분을 대량 처분해야 한다는 우려는 이전보다 크게 줄었다. SK실트론 지분 29.4%라는 별도 자산의 가치가 최근 거래를 통해 9500억원대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SK㈜ 주식 1297만5472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은 17.90%다.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할 경우 이 지분 일부가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SK㈜ 주가의 오버행과 최 회장의 지분율 하락 가능성이 함께 거론돼왔다.
하지만 이러한 계산은 지난달 31일 SK실트론 거래 이후 달라졌다. SK㈜는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를 ㈜두산에 약 2조3000억원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주당 가격을 최 회장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나머지 29.4%에 적용하면 단순 환산 가치는 약 9500억원대다.
하나증권도 지난 17일 이 지분 가치를 약 9500억원으로 계산했다. 최 회장 측이 해당 지분을 처분할 경우 SK㈜ 지분 매각 없이도 재산분할금의 상당 부분을 마련할 수 있다며 SK㈜ 오버행 우려가 상당 부분 낮아질 것으로 봤다.
2535억에 확보한 실트론 29.4%...9년 만에 9500억대
최 회장이 SK실트론 29.4%에 투자한 시점은 2017년이다. 당시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했던 지분을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확보했다. 거래금액은 2535억원이었다.
이번 두산 거래가격을 그대로 적용하면 해당 지분 가치는 9년 만에 약 3.8배로 불어난다. 금액으로는 7000억원 이상 늘었다. 파기환송심이 정한 재산분할액 9440억원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9500억원대가 최 회장이 그대로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지분에는 TRS 구조가 걸려 있어 처분 과정에서 정산이 필요하다. 세금과 금융비용도 반영해야 한다. SK㈜가 두산에 넘기는 70.6%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두산과 체결된 주식매매계약의 대상도 SK㈜가 가진 70.6%다. 최 회장 측 29.4%는 포함되지 않았다. 잔여 지분의 실제 처분 여부와 가격, TRS 정산 뒤 확보할 수 있는 현금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9440억원 전부를 SK㈜ 주식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를 약화시키기에는 충분하다. 실트론 지분을 현금화할 경우 단순 환산액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SK㈜ 지분에 의존해야 할 자금 규모 자체를 줄일 수 있다.
최 회장 개인에게 적지 않은 자산 감소가 발생할 수 있는 것과 SK그룹 지배력이 흔들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공개된 자산과 거래가격만 놓고 보면 SK㈜ 지분 대량 처분이 유일한 자금 조달 수단은 아니다.
"주주·그룹경영 영향 최소화"...9440억도 다시 대법원으로
최 회장 측은 재상고 과정에서 주주와 그룹 경영에 미칠 영향도 언급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지난 14일 최 회장이 고심 끝에 재상고장을 제출했다며 "주주들과 그룹 경영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자세로 향후 절차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재산분할액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1심 665억원에서 2024년 항소심 1조3808억원으로 늘었다가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지난달 9440억원으로 다시 산정됐다. 최 회장의 재상고로 이 금액은 다시 대법원 판단을 받는다.
SK실트론 29.4%의 단순 환산가 9500억원대가 그대로 현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매각 때는 TRS 정산과 세금 등을 반영해야 한다. 다만 재산분할액 9440억원 역시 확정된 숫자는 아니다. 재상고심에서 재산분할액이 낮아질 경우 실트론 실제 현금화액과 최 회장이 마련해야 할 금액의 차이도 함께 줄어든다. 현재 숫자만으로 부족분을 SK㈜ 지분 매각 규모로 계산하기는 이른 이유다.
SK㈜와 두산의 SK실트론 지분 70.6% 거래는 내년 1월31일 종결될 예정이다. 최 회장 측 29.4%는 매각 여부와 가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실제 거래가격과 TRS 정산액이 얼마로 정해질지, 대법원이 9440억원을 그대로 유지할지가 앞으로의 셈법을 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