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6일(일)

'한국 프로야구 유일 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 별세... 향년 83세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8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5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백인천 전 감독은 이날 오전 6시 41분 충남 천안 단국대학교병원에서 뇌출혈로 투병 중 별세했다.


전날 오전 6시경 천안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백 전 감독은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실려갔다. 심폐소생술로 혈압과 맥박을 되찾았으나 상태가 심각해 평소 정기 치료를 받던 단국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백인천 전 감독 / 뉴스1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고인의 장례를 역대 두 번째 KBO장으로 진행한다. KBO와 유족은 천안 단국대병원에 빈소를 차렸으며 17일 오전 발인 예정이다.


고인은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23년간 선수 생활을 펼쳤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에서 감독 겸 선수로 뛰며 타율 0.412를 기록한 게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 이는 현재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단일 시즌 4할 타율을 달성한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난 백 전 감독은 한국전쟁 시기 월남해 경동중과 경동고에서 야구를 익혔다. 빙상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도 활약할 만큼 튼튼한 하체와 출중한 타격 능력을 자랑했다.


포수였던 고인은 1961년 실업야구 농협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1962년 자유계약으로 일본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닛폰햄 파이터스)에 진출했다.


이후 다이헤이요 라이언스(현 세이부 라이온스),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머린스), 긴테쓰 버펄로스를 거치며 1981년까지 일본에서 활약했다. 다이헤이요 소속이던 1975년에는 타율 0.319로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귀국한 백 전 감독은 1983~1984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23년간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백인천 전 감독 / 뉴스1


은퇴 이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85년 청보 핀토스 타격 인스트럭터로 지도자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에 올랐다. '혼(魂)의 야구'를 앞세운 백 전 감독은 LG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백 전 감독은 LG(1990~1991년), 삼성 라이온즈(1996~1997년), 롯데 자이언츠(2002~2003년) 등 세 구단에서 감독을 역임했다. 삼성과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는 타격 인스트럭터로 선수들을 가르쳤다.


1997년 삼성 감독 시절에는 천보성 당시 LG 감독이 삼성 타자들의 압축 배트 사용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른바 '부정 배트'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도자에서 물러난 뒤에는 2000년대 초반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라운드에서 정신력과 투쟁심을 강조하는 용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말년은 평탄하지 않았다. 가정사로 어려움을 겪었고 삼성 감독 시절 처음 발병한 뇌경색이 이후 세 차례 더 찾아왔다.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등 경제적 고통도 겪었다.


백 전 감독의 타계로 프로야구 원년 6개 구단의 초대 사령탑 중에는 박영길(85) 전 롯데 감독만 생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