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상징인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이들 뒤에는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애국 기업'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국내 최초의 양약이자 국민 소화제인 '활명수'로 잘 알려진 동화약품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며 민족기업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단순한 제약회사를 넘어, 격동의 시대 속에서 독립운동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동화약품이 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재조명되고 있다.
활명수 수익금, 상해 임시정부 군자금으로
동화약품의 창업주이자 활명수를 개발한 은포 민강 선생의 애국심은 각별했다. 그는 활명수를 통해 얻은 수익을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보탰다.
일본의 삼엄한 감시로 자금 전달이 어려워지자, 민강 선생은 중국 현지에서 직접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활명수를 보내는 등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1897년 활명수 출시 당시 한 병 가격은 50전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활명수 한 병은 막걸리 한 말과 설렁탕 두세 그릇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고가였다.
민강 선생은 동화약품 본사(당시 동화약방)를 상해 임시정부의 연락망인 '서울연통부' 거점으로 활용하며 독립운동을 펼치다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신간회 활동부터 광복군 중대장까지 이어진 항일 정신
민강 선생의 뒤를 이어 동화약품을 이끈 인물들 역시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했다. 보당 윤창식 선생은 1936년 동화약품을 인수하며 항일운동단체인 신간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의 아들인 가송 윤광열 명예회장 또한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징집되었으나 탈출하여 광복군 주력부대인 지청천 장군의 광복군 제1지대 중대장으로 활약하며 독립운동의 맥을 이어갔다.
이처럼 동화약품은 창업주부터 후대 경영인까지 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하며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극복하려 노력했다.
'독립운동 자금'에서 '물 부족 국가 지원'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생명을 살리는 물로 통했던 동화약품의 활명수는 오늘날에도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매년 활명수 창립기념판을 선보이고 있으며,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물 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 우물 설치, 위생 교육 사업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과거 독립운동 지원을 통해 민족의 생명을 지키려 했던 기업의 정신이 현대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화약품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민족의 아픔을 함께했던 '애국기업'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활명수를 통해 얻은 수익을 독립운동에 기부하고, 경영인들이 직접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동화약품의 발자취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며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