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의 한 말 농장에서 불법도축 현장이 적발된 가운데, 은퇴한 지 20여일밖에 안 된 퇴역 경주마가 현장에서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4일 동물보호단체 '제주행복이네협회'와 '제주비건'은 말 농장 농장주를 동물보호법과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제주시에 현장에 남겨진 동물들의 긴급 격리와 보호도 요청했다.
지난달 31일 동물단체와 제주시, 자치경찰이 합동점검을 실시한 결과 불법도축 정황이 확인됐다. 말고기 전문식당을 운영하는 해당 농장주는 불법도축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는 훼손된 말 사체와 뼈, 도축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냉동고에서는 말고기와 흑염소 사체 등이 발견됐다.
단체들은 "2024년 충남 공주 '폐마목장'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공주의 한 무허가 축사에서는 퇴역 경주마 20여 마리가 방치돼 굶어 죽거나 폐사 직전 구조됐다.
문제는 적발 이후에도 사흘 넘게 동물들이 폭염 속에 방치됐다는 점이다. 단체들이 3일 재차 농장을 찾았을 때 말 4마리와 흑염소 1마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단체들은 한국마사회의 '말 긴급구호체계'에 보호 요청을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모두 연결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제주시가 4일 오전 수의사를 파견해 확인한 결과, 남겨진 말 중 한 마리는 불과 20여일 전까지 경주마로 활동했던 '천행챗'(5살)으로 확인됐다. 더러브렛 품종인 천행챗은 2023~2026년 40차례 경주에 출전해 약 1억4600여만원의 상금을 거뒀지만, 지난달 16일 은퇴 후 이 농장으로 보내졌다.
김란영 제주비건 대표는 "천행챗은 서류상으로는 퇴역 직전 '승용마'로 전환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불법도축 농장에 버려진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한국마사회가 말 복지 성과로 내세우는 '승용 전환율'의 허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승용 전환율은 경주마가 은퇴 후 승마용 말로 활용되는 비율을 뜻한다. 지난 4월 제주비건이 한국마사회의 퇴역 경주마 승용 전환율을 분석한 결과, 실제 신고된 말들의 비율이 공식 비율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는 "경주마는 영구식용금지 약물을 투여받기도 하는데 불법도축 농장에서 발견된 것은 큰 문제"라며 "불법도축한 말고기가 실제 식당으로 유통됐는지 수사를 통해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 내 말 농장 전수조사와 말고기 유통 과정, 말 긴급구호체계의 전반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농장주가 말 소유권을 포기하는 대로 농장에 남겨진 말을 제주대 말 보호시설로 이송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