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부터 균열, 2005년 사실상 파경...2011년 집 나선 뒤 15년 별거
대법원, 노태우 300억원 기여 배제...9440억원 놓고 마지막 법적 쟁점
1988년 9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올린 결혼식은 37년 뒤 법정에서 끝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37년간 법적 부부였지만, 그중 21년은 사실상 파경 상태로 보냈다.
결별의 청구서는 현금 9440억원이다. 지난 7월 24일 서울고법 가사1부가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지급하라고 판결한 액수다. 양측이 재상고하지 않으면 두 사람 사이에 남은 마지막 법적 쟁점도 정리된다.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두 사람의 혼인 관계는 오랫동안 실체를 잃은 상태였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생활을 따라가면 파경은 2005년 무렵부터 보인다. 두 사람은 같은 집에서 잠자리와 생활 동선을 갈라놓고 서로의 일상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 시기 양쪽 모두 서로에게 헤어지자는 뜻을 전했고, 노 관장이 먼저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부부라는 이름은 남아 있었지만 공동생활은 이미 멈춰 있었다. 2011년부터는 거주지까지 완전히 갈렸다. 이후 15년간 이어진 법정 결별은 갑작스럽게 무너진 혼인을 정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래전에 끝난 관계를 법률상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관계 균열의 시작점은 1998년
판결문과 재판 과정에서 나온 양측의 주장을 보면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시점은 1998년 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별세를 전후한 무렵이다.
최 회장은 갈등의 뿌리로 가치관 차이를 들어왔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가치관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사회적 지위나 주변의 시선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충돌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노 관장의 직설적인 화법과 체면을 크게 살피지 않는 태도도 갈등을 키웠다는 게 최 회장 측의 설명이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2003년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를 거치며 더 벌어졌다. 그룹의 존폐가 걸린 수사와 시장의 압박 속에서 최 회장은 경영권과 회사의 생존을 함께 지켜야 했다. 부친을 떠나보낸 뒤 그룹까지 위기에 놓인 시기였지만, 가정에서도 기대했던 위로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최 회장이 재판에서 밝힌 혼인 생활의 기억이다.
최 회장이 2013년 작성했지만 당시 사법 절차로 제출하지 못한 이혼소장에도 당시의 심경이 담겼다. 슬픔과 공황에 빠져 있을 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배우자의 따뜻한 말이었지만, 이미 굳어진 가치관 차이로 관계를 되돌리기 어려웠다는 내용이었다.
갈등은 일시적인 부부싸움에 머물지 않았다. 최 회장은 2005년 무렵부터 두 사람이 완전히 파경 상태에 들어갔다고 일관되게 밝혀왔다. 한집에 살면서도 생활 공간과 동선이 나뉘었고, 부부로서 대화와 교류도 끊겼다. 혼인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보다 언제, 어떤 조건으로 끝낼지를 놓고 양측의 대화가 오가던 시기였다.
노 관장의 기억은 정반대다. 30년 넘도록 세 자녀를 키우며 가정을 붙들었고, 남편의 그룹 경영을 뒷받침하면서 SK의 대외 활동에도 힘을 보탰다는 것이다. 가정과 아이들을 지킨 사람도 자신이었다고 했다.
혼인 파탄의 원인을 보는 시각도 달랐다. 노 관장은 가치관 차이가 아니라 최 회장의 혼외 관계가 가정을 무너뜨렸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법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 혼인 파탄의 법적 책임을 최 회장에게 물었다.
다만 법원의 책임 판단과 두 사람의 공동생활이 언제 무너졌는지는 별개의 시간표를 그렸다. 혼외 관계가 외부에 알려진 것은 2015년이지만, 부부 사이의 단절은 그보다 10년가량 앞서 나타났다. 잠자리와 생활 동선이 갈라지고 이혼 요구까지 오간 2005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2005년 파경, 2011년 완전 별거
냉랭했던 관계가 적대적 대립으로 바뀐 시점은 2011년 SK그룹을 겨눈 검찰 수사 무렵이었다.
최 회장 측은 노 관장이 청와대 고위 인사를 통해 수사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이후 해명 과정에서도 신뢰가 무너졌고 배신감을 느꼈다고 이혼소장에 적었다. 노 관장 측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했다. 오히려 2013년 최 회장이 법정 구속된 뒤 가족을 추스르고 옥바라지를 한 쪽은 자신이라고 맞섰다.
최 회장은 2011년 9월 11일 집을 나왔다. 집무실과 별도 거처에서 먹고 자며 가족과 분리된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이혼이 확정될 때까지 이어진 15년 별거의 출발점이었다. 두 사람의 파경이 외부에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2015년이었다. 관계가 깨진 시점과 세상에 알려진 시점 사이에는 약 10년의 간격이 있었다.
그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앞두고 노 관장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A4용지 7장 분량의 탄원서를 보냈다. 최 회장이 풀려나도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석방보다 반성과 변화의 시간을 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노 관장은 탄원서의 존재가 알려진 뒤 최 회장의 석방을 호소한 편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17년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내용은 반대였다. 최 회장에게 사면이 필요하다는 호소보다 사면을 막아 달라는 요청이 중심이었다.
같은 해 12월 29일 최 회장은 언론에 손편지를 공개했다. 혼외 자녀의 존재와 이혼 의사를 함께 밝히면서 십 년 넘게 깊은 골을 두고 지냈고, 회사 일과 여러 사정으로 법적 정리가 늦어졌다고 적었다. 혼외 자녀 공개는 파경의 출발점이라기보다, 이미 2005년부터 이어진 관계 단절이 외부에 드러난 시점에 가까웠다. 노 관장은 공개 대응을 삼가면서도 가정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몇 해 동안 유지했다.
법이 붙들어 둔 21년
법적 절차는 2017년 7월 19일 최 회장의 이혼 조정 신청으로 시작됐다. 조정이 결렬되면서 이듬해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다. 이혼을 마다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태도를 바꿨다. 관계 회복의 희망이 사라졌다는 취지와 함께 SK㈜ 지분 절반에 해당하는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2022년 12월 1심은 SK㈜ 주식을 최 회장의 고유재산으로 봤다.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24년 5월 30일 항소심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에 들어갔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위자료는 20억원, 재산분할액은 1조3808억원으로 뛰었다.
최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주식 가치 산정 등에 오류가 있다며 상고했다. 2025년 10월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에 유입됐다고 하더라도 불법 자금인 이상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산분할 부분은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다. 이혼과 위자료는 이때 확정됐다. 결혼 37년, 실질적 파탄 20년 만이었다.
파기환송심은 SK㈜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의 기여도를 3분의 1로 산정해 최 회장이 현금 9440억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선고 직후 최 회장 측 대리인은 "약 20년에 가까운 혼인 해소 과정에서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이혼이 확정됐다"며 "최 회장은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을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상고 여부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노 관장 측 대리인은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법조계의 시선은 이제 제도로 향한다. 현행 대법원 판례는 혼인 파탄에 더 큰 책임이 있는 쪽이 낸 이혼 청구를 원칙적으로 막는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 상대 배우자와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문제는 관계가 이미 끝난 뒤다. 한쪽이 이혼에 응하지 않으면 부부로서의 실체가 사라진 관계도 수십 년간 법률상 혼인으로 남을 수 있다. 최 회장과 노 관장도 2005년 무렵부터 생활 동선과 잠자리를 갈랐고 2011년부터는 거주지마저 나눴지만, 법적 이혼은 2025년에야 확정됐다.
관계 소멸이 확인된 경우 신분 관계를 정리할 길은 열어 주되 재산분할과 위자료 등 상대 배우자에 대한 보상 장치를 강화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과 영국, 독일이 택한 파탄주의 요소를 제한적으로 참고하려는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세기의 결별'이 사실상 끝난 혼인을 법이 언제까지 붙들어 둘 것인지에 대한 한국 가사 법제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