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체결한 원자력 협정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 권한 인정이 핵 기술 확산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국과 일본, 독일 등 핵 기술 확보를 추진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사우디가 하루전 공개한 원자력 협정과 관련한 분석 기사를 통해 “이번 협정은 지정학적 불안과 에너지 시장 경색, 축소되고 있는 미국의 안보 우산 등에 대비하기 위해 각국이 핵 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불안정한 세계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NYT는 특히 이번 협정이 "왜 사우디는 되고 우리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을 촉발할 수 있다며 한국과 일본, 독일, 폴란드 등을 대표적인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국가로 꼽았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과 엄격한 안전조치 수용, 26기 원자로 가동 경험 등 여러 안전장치를 약속하고도 여전히 미국과 우라늄 농축 권한을 두고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반면 아직 원전을 건설하지 않은 사우디가 잠재적 농축 권한을 확보하게 되면서 한국 입장에서는 이중잣대로 느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NYT는 "이번 협정이 한국과 워싱턴 간 (원자력) 협상 진전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면서도 "워싱턴이 계속 서울의 요구를 무시할 경우 70년 된 동맹 관계에 깊은 균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앞서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를 통해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끌어낸 바 있다.
사우디와의 원자력 협정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자 미국 정부도 진화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협정을 승인하겠다면서 "이는 전적으로 사우디가 매우 존중받고 성공적인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고 말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국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 수립에 합의한 협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다른 중동 국가로 확대하려 하고 있으며, 사우디에도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사실상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사우디는 그동안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요구해 온 만큼, 미국이 제시한 조건이 협정 추진 과정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