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 시장의 '빅3' 구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토요타그룹에 이어 세계 판매 2위를 지켜온 폭스바겐그룹이 중국 시장 부진과 수익성 악화로 휘청이면서 3위 현대차·기아가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지난 10일 폭스바겐그룹이 공개한 판매 실적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은 412만5700대로 전년 동기보다 6.3% 감소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196만6267대와 163만988대 등 총 359만7255대를 판매했다.
현대차·기아의 합산 판매량도 전년보다 약 1.6% 줄었지만 감소 폭은 폭스바겐그룹보다 작았다. 이에 따라 두 그룹의 상반기 판매 격차는 지난해 75만871대에서 올해 52만8445대로 22만대 이상 축소됐다.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현대차·기아가 중장기적으로 세계 판매 2위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폭스바겐의 경영난을 심화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중국 시장의 부진이다. 폭스바겐그룹의 올해 상반기 중국 판매량은 97만3000대로 전년 동기보다 25.9% 급감했다. 특히 2분기 중국 판매량은 36.6% 줄었다.
BYD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과 빠른 신차 출시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면서 폭스바겐의 중국 시장 대응력과 현지 제품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전기차 판매에서도 지역별 양극화가 뚜렷해졌다. 폭스바겐그룹의 상반기 글로벌 순수전기차 판매량은 43만8500대로 5.8% 감소했다. 유럽에서는 8.4% 증가했지만 중국과 미국에서는 각각 47.9%, 68.8% 급감했다.
중국 업체와의 가격·기술 경쟁에 밀린 데다 미국의 관세와 전기차 정책 변화까지 겹치면서 주요 시장에서 동시에 압박받고 있다.
판매 부진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폭스바겐그룹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89억유로로 전년보다 53% 감소했고 영업이익률은 2.8%에 그쳤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도 25억유로로 14.3% 줄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기존에 계획된 약 5만명 규모의 인력 감축에 더해 최대 5만명을 추가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노버·엠덴·츠비카우·네카줄름 등 독일 공장 4곳의 폐쇄 또는 용도 전환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에만 의존하기보다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순수전기차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에서 폭스바겐그룹을 제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약 4조72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폭스바겐그룹의 25억유로(약 4조3000억원)를 웃돌았다.
현대차그룹이 폭스바겐과의 격차를 더 좁힐 기회를 맞았지만, 최근 현대차 노조가 부분파업에 돌입하면서 생산 차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올해 임금협상 결렬에 따라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근무조별 2시간씩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생산라인 기준 가동 중단 시간은 총 12시간이다.
노조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과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상여금 인상,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기본급 8만9000원 인상과 성과금 350%·1000만원, 주식 15주 등을 제시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가 사흘 동안 16시간 부분파업을 진행했을 당시 약 7000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하면서, 3000억원 안팎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 바 있어 이번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하거나 부품 계열사와 협력업체 노조로 확산하면 출고 지연과 비용 증가가 글로벌 공급망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판매 확대를 위해 생산량을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공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현대차그룹에는 부담이다.
여기에 국내 친환경차 시장의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지고 있다.
테슬라 모델Y는 지난 6월 국내 신규 등록 대수 9188대를 기록해 국산차를 포함한 전체 차종 순위 2위에 올랐고, BYD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 SUV 씨라이언6 DM-i의 국내 가격을 3750만원으로 책정하며 국산 친환경 SUV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폭스바겐과 현대차·기아의 판매 격차가 빠르게 줄어든 지금이 현대차그룹에는 중장기적인 세계 2위 도전을 준비할 중요한 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사가 얼마나 빠르게 타협점을 찾고 생산 안정성을 확보하느냐도 현대차그룹이 폭스바겐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 영향을 미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