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3일(월)

"재테크 열풍 끝났다"... 금값 폭락에 롤렉스 등 명품 시계 시장 '휘청'

고가 시계 시장이 금값 급락과 함께 얼어붙었다. 코로나19 이후 몇 년간 되팔 때 웃돈을 받을 수 있는 재테크 수단으로 인기를 끌었던 롤렉스 같은 명품 시계가 올해 들어 가격 하락세로 돌아섰다. 자산시장 호황 속에 투자 상품으로 대접받던 중고 시계 시장이 금리 인상 가능성과 금값 폭락이라는 이중 악재를 맞으며 조정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지난 9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와 영국 중고 시계 거래 플랫폼 서브다이얼이 공동으로 집계하는 '블룸버그 서브다이얼 지수'에 따르면, 롤렉스의 대표 모델 '데이토나 오이스터플렉스' 금 소재 버전의 중고 가격은 지난 4월 이후 석 달 동안 4% 내렸다.


이 지수는 중고 시장에서 거래액 기준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고가 시계 50개 모델의 가격 추이를 추적한다.


같은 지수에 포함된 금 소재 시계 13개 모델도 지난 3개월 동안 대체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직전 1년 동안 평균 9% 가까이 상승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블룸버그는 "금값 상승에 올라타 일괄적으로 뛰던 중고 금 시계 강세가 1년도 지나지 않아 사실상 멈췄다"고 분석했다.


롤렉스 데이토나 오이스터플렉스 화이트골드 / UK Specialist Watches


중고 시계 가격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금값 폭락이다. 금값은 올해 1월 28일 온스당 5597달러(한화 약 842만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고점을 찍은 지 한 달 만인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낙폭이 커졌다.


이달 9일 금은 온스당 4100달러(약 617만 원) 안팎에 거래되며 고점 대비 약 27% 하락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금값이 3년 가까이 이어온 강세장을 마감하고 약세장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금 소재 고가 시계는 원재료 가격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9일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롤렉스 서브마리너 신품 가격은 미국에서 1만 1350달러(약 1708만 원)에 판매된다. 반면 같은 모델의 18K 금 버전은 5만 900달러(약 7660만 원)에 팔리고 있다. 금 버전에 들어간 금 자체의 가치만 현 시세로 1만 5000달러(약 2258만 원)어치에 이른다. 금값이 오르면 18K 금 버전 신제품 가격과 금 소재 중고 제품 시세가 나란히 상승하는 구조다.


실제로 금값은 2024년 한 해 동안 40% 가까이 올랐고, 지난해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 기간 새 시계 가격이 금값과 관세를 따라 빠르게 오르자 수요는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가격이 오르던 중고 시계 시장으로 몰렸다.


크리스티 데이비스 서브다이얼 공동창업자는 지난해 8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금값 급등과 스위스프랑 강세로 새 시계 값이 오르자 수집가들이 중고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며 "새 모델을 살 때 따라붙는 긴 대기 기간을 피하려는 수요도 몰렸다"고 설명했다.


인사이트


주요 명품 시계 브랜드들은 지난해 잇따라 가격을 인상했다. 스위스 파텍필립은 지난해 9월 미국 판매 가격을 15% 올렸고, 까르띠에도 대부분 모델 가격을 10% 인상했다. 지난해 4월 말 미국이 스위스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자 관세가 붙기 전 물량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몰리며 중고 롤렉스와 파텍필립 구매가 일시적으로 급증하기도 했다. 블룸버그 서브다이얼 지수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5.3% 상승했다.


중고 고가 시계 시장은 코로나19 기간 저금리와 주식·가상자산 가격 상승, 여행·외식 소비 감소가 겹치며 투기성 자금까지 끌어들였다. 영국 패션 전문지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은 이 거품이 2022년 봄 가상자산 가격이 무너지고 금리가 오르면서 한 차례 꺼졌고, 시장이 지난해 금값 랠리를 타고 회복하다 올해 다시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금값 하락 외에도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과 달러 강세가 겹치며 금의 투자 자산으로서 매력이 떨어진 것도 시계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금은 이자가 붙지 않는 안전 자산으로, 금리가 오르면 채권이나 예금 같은 이자 수익 자산에 비해 상대적 매력이 떨어진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


다만 모든 고가 시계가 하락한 것은 아니다. 금 소재 롤렉스처럼 기존 인기 모델이 미끄러지는 와중에도 파텍필립처럼 브랜드 가치와 희소성이 강한 인기 시계 10개 모델의 가격은 올해도 약 2% 올랐다. 스위스 자산운용사 폰토벨은 지난해 롤렉스가 시계 약 120만 개를 생산하는 동안 파텍필립 생산량은 7만 2000개, 오데마피게는 5만 1000개에 그친 것으로 추산했다.


업계에서는 어떤 고가 시계든 사두면 오른다는 식의 장세가 끝났다고 본다. 금리 인상 가능성과 자산시장 변동성 확대 속에 실수요와 희소성을 따지는 선별 장세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는 9일 금 소재 중고 데이토나 오이스터플렉스를 노려온 수집가라면 지금이 사들일 만한 시점일 수 있다며 이번 가격 조정을 매수 기회로 봤다. 금값이 다시 오르거나 고액 자산가 소비가 살아나면 일부 인기 모델 가격은 반등할 수 있지만, 팬데믹 시기처럼 모델을 가리지 않고 웃돈이 붙는 장세가 재연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