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혈자 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병원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에 필요한 혈액을 직접 구해오라고 요구하는 '지정 헌혈'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헌혈자 수는 125만 1288명으로 200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치를 나타냈다. 반면 헌혈자 1인당 평균 헌혈 횟수는 2022년 2건, 2023년 2.13건, 2024년 2.26건, 지난해 2.27건으로 매년 증가해 소수의 반복 헌혈자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됐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급성골수성백혈병(AML)을 앓고 있는 박성후(46)씨는 지난 5월 병원에서 "수술에 필요한 혈소판을 직접 구해 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박씨 수술에는 혈소판 2팩이 필요했으나 병원이 확보한 물량은 1팩에 불과했다. 박씨와 가족들은 지인들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나머지 분량을 확보했다. 박씨 아내 이수영(45)씨는 "이번엔 운 좋게 피를 구했지만 앞으로도 여러 차례 수술이 예정돼 있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혈액 수급난의 주요 배경으로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젊은 층 인구의 감소가 지목됐다.
대한적십자사 조사 결과 지난해 전체 헌혈자 중 20대(33.7%)와 16~19세(18.6%) 등 청소년과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어섰다.
2024학년도 대입부터 헌혈이 봉사활동 실적으로 반영되지 않게 되면서 10대들의 헌혈 유인이 감소한 점도 원인으로 분석됐다.
수혈용 혈액 부족이 상시화되면서 과거 희귀 혈액형 보유자나 긴급 수술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쓰이던 지정 헌혈은 일반 수술 환자들에게까지 필수적인 절차로 자리 잡고 있다.
지정 헌혈은 일반 헌혈 자격을 갖춘 성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환자와 헌혈자를 매개하는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활성화됐다.
대한적십자사 집계 결과 지정헌혈 건수는 2024년 1만 5790건에서 지난해 1만 7454건으로 10.5% 늘었으며 올해는 5월까지만 해도 2만 4034건에 달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헌혈자가 줄어 혈액 수급 안정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재헌혈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