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29일(월)

"당신이 이겼습니다"... 법원, 지적장애인 눈높이에 맞춘 '쉬운 판결문' 제공

지적장애인 당사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된 첫 '이지리드' 판결문이 등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이 지적장애인 원고를 배려해 쉬운 단어와 그림으로 구성한 획기적인 판결문을 내놨다.


2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강우찬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25일 지적장애인 A씨가 양천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특별한 판결문을 제공했다.


이번 판결문은 대법원이 올해부터 시행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사법지원 예규'에 따라 작성된 첫 이지리드(easy-read·읽기 쉬운) 판결문이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판결문 앞부분에 별도 항목을 마련해 "이 글은 법원이 왜 이렇게 판단했는지 알려드립니다. 재판을 신청한 분이 읽으면 좋습니다"라고 안내했다. "재판을 낸 원고 OOO씨가 이겼습니다. 법원은 당신을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합니다"라는 문구처럼 기존 법률 용어와 전혀 다른 쉬운 표현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판결문에는 A씨가 소송에서 승소한 결과와 함께 구청 측 주장, 법원이 구청 결정이 틀렸다고 본 이유, 선고에 따라 구청 결정이 취소된다는 내용 등이 3페이지에 걸쳐 친절하게 풀어졌다. 원고를 '당신'이라고 표기하고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소송구조 변호사님에게 문의해 주세요"라는 안내도 담았다.


20대인 A씨는 2023년 11월 양천구청에 지적장애인 등록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구청은 국민연금공단에 장애 정도 심사를 의뢰한 결과 지적장애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처분했다.


서울행정법원


공단은 A씨의 진료기록지에 지능지수가 지적장애 판정 기준인 70점보다 낮은 65점으로 기재됐지만, 미성년자 때 미해당 판정을 받은 후 현재까지 뇌 손상 등 추가 인지 저하를 일으킬 만한 소견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장애인복지법령 어디에도 성년 이후 지능 저하가 나타난 경우라면 반드시 후천적 뇌 손상이나 기질적 뇌 질환이 객관적으로 증명돼야만 지적장애를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 않는다"며 구청과 공단 판단의 오류를 지적했다.


재판부는 "지적장애의 본질은 현재의 지적 및 적응기능이 항구적으로 제한된 상태인지에 있다"며 "피고가 후천적 뇌 손상 또는 뇌 질환의 존재를 사실상 필수적 요건처럼 전제한 것은 법령상 판단기준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A씨는 지능지수 70 미만의 검사 결과를 최근 몇 년간 세 차례나 기록했고, 복수의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지적장애로 판정받았다. 재판부가 직접 신문했을 때도 A씨는 기본적 일상생활 수행 능력과 독립적 사회생활 능력에 상당한 제약이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장애인복지법,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CRPD), 최근 제정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의 문언과 리시아 칼슨 미국 프로비던스 칼리지 철학과 교수의 저서 '지적장애의 얼굴들'을 인용하며 지능지수만으로 지적장애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장애인복지법령이 정한 지적장애는 단순히 지능지수만으론 판단될 수 없고 결국 그 지적 능력 손상으로 인해 일상 및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이 있는지로 판단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