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간, 갑자기 열이 오르거나 두통이 심해졌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은 집 근처 편의점이다.
약국이 문을 닫은 시간,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편의점을 통해 안전상비의약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실제 편의점 상비약 매출 시간이 증명한다.
GS25에 따르면 의약품 매출의 57.2%가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사이에 발생했고, CU 역시 밤 8시부터 자정까지가 가장 높은 판매 비중을 기록했다. 의약품 매출의 절반 이상이 약국 영업이 끝난 저녁 시간 이후에 발생한 것이다.
편의점 상비약 제도가 처음 도입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약국이 문을 닫은 시간대와 공휴일에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문제는 제도가 시행되고 14년이 지난 지금, 편의점 상비약 확대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현재 11개인 편의점 판매 상비약 품목을 최대 20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법상 판매가 가능한 품목 수는 이미 20개지만, 실제 판매 품목은 2012년 제도 도입 이후 사실상 변화가 없었다. 지난 2018년에도 품목 확대를 위한 논의가 있었지만 대한약사회가 궐기대회를 여는 등 반발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논쟁은 품목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약사단체는 의약품이 일반 소비재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약사가 복용 방법, 주의 사항을 면밀히 설명해 주는 약국과 달리, 편의점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돼 약품 오남용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현재 상비약이 판매되는 편의점의 경우 점주가 4시간의 사전 교육을 이수하고 교육 자료 등도 수시로 배포되지만 편의점을 지키는 점원 대부분이 점주가 일일이 교육하기 어려운 아르바이트생인 점을 고려하면 약사단체의 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약은 같은 제품이라도 연령, 복용 중인 다른 약물, 기저질환 여부에 따라 위험성이 달라진다. 약사들이 의약품 판매를 놓고 단순한 유통의 문제가 아닌 전문 서비스 영역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반면 소비자와 유통업계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현재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상비약은 타이레놀과 같은 해열·진통제다. 특히 심야 시간이나 공휴일, 농어촌 지역에서는 편의점이 사실상 유일한 의약품 구매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1.5%가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62.1%는 품목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안전을 이야기하는 약사단체와 접근성을 이야기하는 유통업계·소비자의 주장은 모두 일정 부분에서 타당성을 갖는만큼, 약을 오남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과 약을 제때 구하지 못해 발생하는 위험성 사이에서 사회적 편익을 높일 수 있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정부의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