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협 선정 6개월째 SPA 미체결...두산엔 웨이퍼 공백, SK엔 자산가치 재산정 시간
AI 기대감에 몸값 논의 이어져...SiC 적자·2조6천억 차입은 인수 이후 두산 몫
두산이 SK실트론을 "반도체 전략의 마지막 퍼즐"로 부른 시간은 SK에 협상력을 넘겨준 시간이 됐다. 지난해 12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뒤 6개월이 지났지만 주식매매계약(SPA)은 나오지 않았다. 두산에는 반도체 사업의 빈칸이 남았고, SK에는 매각가와 거래 조건을 다시 계산할 시간이 생겼다.
지난 15일 SK는 해명공시 재공시에서 SK실트론 매각과 관련해 두산과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매각 대상 지분과 거래 금액, 계약 체결 시점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두산에 독점 협상권을 줬지만, 거래 종결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두산이 SK실트론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두산테스나와 전자BG의 반도체용 동박적층판(CCL)·패키지 소재 사업, 세미파이브 지분 투자까지 이어온 사업 확장에 웨이퍼가 더해지면 반도체 소재와 후공정 포트폴리오가 한층 넓어진다. 반도체 생산의 출발점인 실리콘 웨이퍼는 다른 매물로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필요한 자산일수록, 두산의 협상 카드는 줄었다
문제는 두산이 그 필요성을 시장에 너무 선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SK실트론은 두산에 신규 투자처가 아니라 반도체 사업 구상에서 비어 있는 한 칸으로 여겨지게 됐다. 협상이 길어질수록 두산에는 "왜 꼭 사야 하느냐"는 질문이 남고, SK에는 "왜 지금 가격에 팔아야 하느냐"는 선택지가 커진다.
SK실트론의 현재 실적만 놓고 보면 두산이 높은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이 있다.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453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8% 줄었다. 영업이익은 88억원으로 76.7% 감소했고, 82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AI 반도체 수요가 늘었지만 그 효과가 연결 실적에 온전히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력인 실리콘 웨이퍼 사업과 달리 미국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사업은 여전히 변수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경쟁 심화로 적자가 이어졌고, 지난해에는 SiC 사업 관련 손상차손도 대규모로 반영됐다. 두산이 인수할 경우 AI 반도체 수요에 따른 웨이퍼 업황 회복 기대뿐 아니라 SiC 사업의 추가 투자 부담과 회복 시점까지 함께 떠안아야 한다.
그럼에도 SK가 가격을 낮춰 서둘러 거래를 끝낼 유인은 약해지고 있다. AI 서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300㎜ 웨이퍼의 장기 수요를 다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웨이퍼 업종은 고객사 재고와 장기공급계약 영향으로 업황 회복이 실적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다. 지금의 실적보다 향후 가동률과 판가 회복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쪽에서는 SK실트론의 가치가 아직 덜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5조원 몸값 앞에 놓인 SiC·차입금·인수금융
가격은 두산의 자금 조달 여력과 직결된다. 시장에서는 SK실트론의 기업가치를 5조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순차입금도 2조6천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다만 실제 매각 대상 지분, 지분 인수대금, 차입금 승계·차환 방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두산은 인수대금 외에 SK실트론 차입금 차환과 설비 투자 재원까지 마련해야 한다. 인수금융 규모를 어디까지 늘릴지, 재무적투자자(FI)를 추가로 들일지, SiC 사업을 거래에 포함할지도 계약서가 나와야 확인할 수 있다. 가격이 높아질수록 두산이 인수 뒤 부담할 이자비용과 추가 투자금도 커진다.
SK실트론의 몸값은 웨이퍼 업황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두산이 제시할 가격, 인수금융 조건, SiC 사업 처리 방식 그리고 시간이 SPA 체결 여부를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