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6일(화)

[신간] 레우스 수기

스페인 건축계의 거장 안토니 가우디가 직접 쓴 유일한 기록물이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올해는 가우디 사후 100주기를 맞는 해다. 가우디의 친필 노트와 서신을 묶은 '레우스 수기'가 국내에서 초역 출간되며 건축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은 제3자의 시선이 아닌 가우디 본인이 직접 남긴 글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청년 시절 가우디의 단상과 함께 그간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서신, 기사글이 함께 실렸다.


'곡선의 마술사' '신의 건축가'로 불리는 가우디지만, 정작 그가 남긴 1차 기록은 극히 드물다. 지난 1936년 성가정 성당 부지 내 작업실이 방화로 전소되면서 내부에 보관 중이던 모형과 도면, 노트 등 원본 자료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들녘


가우디의 건축 세계는 주로 완성된 작품이나 시각 이미지를 통해 해석되어 왔다. 이 책에 수록된 열세 편의 글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가우디의 기록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귀중한 사료다. 건축가 가우디에 대한 기존 통념에서 벗어나 그의 사유가 형성된 출발점을 보여주는 드문 1차 자료로 평가받는다.


책의 전반부를 차지하는 '레우스 수기'는 가우디가 지난 1873년 바르셀로나에서 건축 수업을 시작한 때부터 1879년 졸업 이듬해까지 7년간 사용한 노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현재 레우스 박물관에 보관된 이 수기는 가우디의 실제 필체로 작성돼 그의 생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기록물이다. 책 뒷부분에는 시장에게 보낸 공식 서신과 설계 설명서, 일간지 기고문 등 가우디의 건축 세계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글들이 엄선됐다.


'레우스 수기'는 타인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가우디 본인의 생각 정리를 위해 작성됐다.


지난 1870년대 독립된 건축가로 막 첫걸음을 뗀 청년 가우디의 다짐과 내면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특히 '구조' '대비' '건설' 같은 단어가 반복 등장하며 가우디가 이미 근대 건축에 관한 본질적 고민을 시작했음을 드러낸다. 레우스는 가우디가 감수성과 사유의 토대를 쌓은 도시로, 이 기록은 그의 사유 기원을 이해하는 핵심 자료다.


가우디는 장식을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닌 구조와 경제성의 문제로 접근하며 기하학적 원리로 해석하려 했다.


기존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생산 방식이 동시대와 어울리는지, 새 시대에 맞는 건축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흔히 '영감의 건축가'로만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재료의 물성과 제작 방식, 비용과 효율까지 고려한 치밀한 사유의 흔적이 이 책에 담겼다. 이러한 시도는 그의 후기 건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이 책은 레우스 수기 초역과 함께 가우디의 모교인 바르셀로나 공과대학교 출신 이병기 교수의 정교한 번역과 해제로 구성됐다.


가우디 전문 연구자로서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텍스트의 맥락을 충실히 복원했으며, 텍스트와 도판을 결합한 구성은 가우디의 사유가 실제 건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가우디는 생전에 체계적인 이론서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그의 건축 세계는 주로 완성된 작품을 통해 해석돼 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전, 건축가로서의 출발점에서 형성된 사유의 흔적을 그대로 담았다.


그동안 일부만 소개됐던 텍스트를 넘어,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기록을 포함해 가우디 사유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도판과 함께 구성된 해제로 텍스트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그의 사고가 실제 건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함께 보여준다.


올해는 안토니 가우디 사후 100주기이자, 그의 대표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완공을 향한 중요한 전환의 해로 주목받고 있다. 화려한 결과물로서의 건축을 넘어 '생각의 출발점'을 조명하는 이 책의 출간은 더욱 뜻깊다.


오늘날 건축과 디자인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설계와 자동화된 제작 기술, 새로운 재료의 등장으로 형태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우디의 사유는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동시대적인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가우디는 "새로운 재료와 방식은 새로운 건축을 요구한다"는 인식 아래, 건축을 단순한 형태의 문제가 아닌 생성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재료와 제작 방식, 구조와 비용이 결합된 총체로서 건축을 바라보며, 장식과 구조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체계로 사고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였다. 이 책은 건축의 완성과 감상에서 나아가 그것이 탄생하기까지의 사고 과정을 추적하게 만든다.


100년 전의 기록은 오늘의 질문과 맞닿으며,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를 해석하는 텍스트가 된다. 이미지로 소비되던 거장을 재정의하고, 그의 진짜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레우스 수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