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4일(일)

성폭행 2년뒤 DNA 증거 나왔는데... '강간 혐의' 용의자 유죄 판결 '파기'한 대법원

성폭행 사건 발생 약 2년 반 만에 제출된 DNA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한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DNA 증거의 보관 과정에서 조작이나 훼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강간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2심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환송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8월 자신의 차량에서 B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을 가해 간음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하지만 2심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피해자가 사건 당시 입고 있던 바지에 대한 DNA 감정이 실시됐고, 그 결과 피고인의 DNA가 검출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바지 일부가 손상된 점도 피해자가 방어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는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DNA 증거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문제가 된 바지는 사건 발생 2년 이상이 지난 2024년 1월에야 수사기관에 제출됐는데, 피해자가 바지를 보관하는 동안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바지를 보관하는 동안 조작이나 훼손 등이 있었는지 여부나 뒤늦게 이를 제출한 경위 등에 대해 수사기관 진술이나 원심법원의 심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바지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외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제3자의 DNA가 함께 검출된 점도 문제로 삼았다. 대법원은 이런 상황에서 바지의 훼손 가능성을 쉽게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과학적 증거방법은 전제로 하는 사실이 모두 진실임이 입증되고 추론 방법이 과학적으로 정당해 오류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경우로 인정돼야만 사실인정에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을 갖는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이어 "검사는 바지의 보관·제출 과정 등에 비춰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된다는 점에 대해 추가로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심도 이를 토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다시 심리·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과학적 증거에 대한 맹목적 신뢰의 위험성도 경고했다. "특히 그 증거방법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유일하거나 유력한 증거일수록 자칫 그 과학성에 대한 맹목적 신뢰로 인해 형사소송의 요체인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증명법칙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또한 대법원은 항소심이 1심 판단을 뒤집는 경우의 요건도 명확히 했다. 1심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됐거나, 논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경우, 항소심 심리 과정에서 심증 형성에 영향을 미칠 만한 객관적 사유가 새로 드러난 경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