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4일(일)

4000억으로 두드린 2700조의 문...박현주, 스페이스X로 韓 투자판 넓혔다

스페이스X 12일 나스닥 입성...공모가 기준 기업가치 1조7700억달러

미래에셋, 2022~2023년 2억7800만달러 선투자...국내 투자자 연결 통로 마련


지난 9일(한국 시간) 저녁 서울 포시즌스호텔. 미래에셋그룹 차세대 리더들 앞에 선 박현주 글로벌전략책임자(GSO·회장)는 우주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대서양 항해가 유럽의 산업혁명을 이끌고 인터넷과 인공지능(AI)이 미국의 패권을 만들었듯, 우주 공간을 활용하는 기업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이 말한 기업은 나스닥에 입성하는 스페이스X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 사진제공=미래에셋자산운용


스페이스X는 11일(현지 시간) 공모가를 주당 135달러로 확정했다. 5억5555만5555주를 모두 신주로 발행해 750억달러를 조달한다. 공모가 기준 기업가치는 1조7700억달러, 원화로 약 2700조원이다. 상장과 동시에 미국 증시 시가총액 7위권에 오르는 규모다.


사우디 아람코 이후 세계 IPO 시장의 새 기준을 세우는 상장이다. 이 문을 4년 전부터 두드린 한국 회사가 있다. 미래에셋그룹이다.


4년 전 심은 4000억원


미래에셋그룹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스페이스X에 총 2억7800만달러를 투자했다. 원화로 약 4천억원대다. 스페이스X가 상장을 공식화하기 전이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에 국내 금융회사가 그룹 차원의 자금을 넣은 결정이었다.


투자 시점도 빨랐다. 미래에셋이 처음 들어갈 당시 스페이스X 기업가치는 1270억달러 수준이었다. 지난해 말 장외 평가가치는 8천억달러까지 뛰었다. 이번 IPO 공모가 기준 기업가치는 다시 1조7700억달러로 높아졌다. 단순 평가액만 놓고도 미래에셋의 선투자 효과는 이미 숫자로 드러났다.


미래에셋의 스페이스X 투자는 한 번의 비상장 지분 투자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페이스X가 올해 초 xAI를 품으면서 미래에셋이 별도로 투자했던 일론 머스크 관련 AI 자산도 같이 묶였다. 우주, 위성인터넷, AI 인프라가 한 회사 안에서 연결된다.


박 회장이 스페이스X를 단순한 우주기업이 아니라 다음 산업 질서를 여는 플랫폼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켓 발사와 스타링크 위성망, AI 인프라가 결합하면 지상 네트워크와 다른 산업 기반이 만들어진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사진제공=스페이스X


'사다 주는 증권사'에서 '만들어 파는 증권사'로


이번 상장에서 미래에셋의 역할은 투자 차익에만 있지 않다.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함께 스페이스X IPO 인수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증권사가 미국 초대형 IPO 과정에서 공모 물량 확보와 국내 투자자 연결을 동시에 시도한 이례적 사례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5일과 8일 개인·법인 전문투자자를 대상으로 스페이스X 공모주 청약을 진행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TIGER 글로벌AI액티브' 등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와 공모펀드 20여개를 통해 물량 배정을 신청했다. 국내 일반 투자자는 개별 공모주 청약이 아니더라도 ETF와 펀드를 통해 스페이스X 공모 단계에 간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갖게 됐다.


이는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꿔준다. 그동안 해외주식 투자는 이미 상장된 주식을 사고파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증권사의 역할도 주문 중개와 환전, 수수료 수취에 가까웠다.


미래에셋이 이번에 만든 구조는 다르다. 비상장 단계에서 먼저 지분을 확보하고, 상장 과정에서는 글로벌 인수단에 참여하고, 공모 물량을 국내 투자자와 운용상품으로 연결한다. 해외주식을 '사다 주는' 증권사에서 투자 기회를 '만들어 파는' 증권사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박 회장은 이 변화가 움직일 자금의 규모까지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4월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자산이 250조원에 달하는데, 이 중 4%만 바꿔도 10조원 규모"라고 말했다. 스페이스X 상장이 국내 해외주식 포트폴리오 교체 수요까지 끌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신규 환전이 없더라도 기존 해외주식을 팔아 갈아타는 자금이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20년 해외 개척이 만든 통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 사진제공=미래에셋그룹


초대형 비상장 딜은 자금만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글로벌 운용 네트워크, 현지 딜 소싱 능력, 투자자 기반, 사후 상품화 역량이 함께 필요하다. 미래에셋이 스페이스X에 닿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년 넘게 쌓은 해외 기반이 있다.


미래에셋은 2003년 국내 운용사 최초로 홍콩법인을 세우며 해외 시장에 나갔다. 이후 미국, 캐나다, 호주, 인도 등으로 운용 거점을 넓혔다. 2018년에는 미국 ETF 운용사 글로벌엑스(Global X)를 인수해 글로벌 ETF 플랫폼을 확보했다.


해외 네트워크는 딜 소싱으로 이어졌다. 딜 소싱은 다시 국내 투자자에게 제공할 상품 경쟁력으로 연결됐다. 스페이스X는 이 구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미래에셋이 일찍 투자한 비상장 자산이 세계 최대 IPO로 이어지고, 이 물량이 다시 국내 투자자 상품으로 연결되는 순환이다.


박 회장은 이 모델을 그룹의 장기 성장 전략으로 보고 있다. 그는 9일 강연에서 "스페이스X 같은 기업공개와 자산관리(WM)를 연결하는 구조가 미래에셋의 장기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투자 재원도 준비돼 있다. 박 회장은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향후 5년간 영업이익과 투자 회수 금액을 합쳐 약 200억달러를 글로벌 인수합병(M&A)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이스X에서 확인한 글로벌 직접투자 모델을 다른 산업과 자산으로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상장 직후 주가 흐름에는 거리를 뒀다. 박 회장은 "상장 직후에는 생각보다 수익률이 높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변동성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투자하지 않는 것은 맞지 않다. 연간 기준으로 상승한다면 우려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첫날 시세보다 장기 보유로 승부하겠다는 뜻이다. 4년 전 상장 계획이 보이지 않던 스페이스X에 4천억원을 넣었을 때와 같은 시간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