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83억 인구 중 약 12억명이 정신건강 문제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0년 대비 거의 2배에 달하는 수치로, 정신질환이 심혈관질환과 암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장애 원인으로 부상했다.
최근 미국 워싱턴대 의대 산하 보건계량평가연구소(IHME)가 국제 의학학술지 란셋에 발표한 연구결과다.
연구팀은 호주 퀸즐랜드대 정신건강연구센터와 공동으로 204개국 21개 지역을 대상으로 1990년부터 2023년까지 33년간 모든 연령대의 정신질환 실태를 조사했다.
연구진은 불안장애, 주요우울장애, 조현병, 섭식장애 등 12가지 정신질환의 유병률과 부담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의 심각성을 측정하기 위해 '장애 보정 수명(DALY)'과 '장애 생활 수명(YLD)' 두 지표를 활용했다. DALY는 장애로 인해 건강하게 살지 못하거나 조기 사망으로 잃은 시간을 의미하고, YLD는 질병으로 장애를 안고 살아간 기간을 뜻한다.
분석 결과 2023년 전 세계 정신질환자는 약 12억명으로 1990년 대비 95.5% 증가했다. 연구를 주도한 데미안 산토마우로 퀸즐랜드대 교수는 "수치가 너무 커서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은 2023년 장애로 인한 수명 손실(DALY) 기준 전 세계 질병 원인 5위를 기록했다. 특히 질병으로 고통받은 기간(YLD) 기준으로는 1위에 올랐다.
가장 큰 증가세를 보인 질환은 불안장애와 주요우울장애다. 주요우울장애 환자는 2019년 대비 24% 늘었고, 불안장애는 47% 이상 급증했다.
두 질환 모두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환자 수가 정점을 찍었다. 거식증과 폭식증 같은 섭식장애는 17~22%, 자폐스펙트럼장애는 21% 증가했다.
산토마우로 교수는 정신질환 급증 원인으로 팬데믹 스트레스, 유전적 요인, 경제적 불안정, 트라우마, 부족하고 비싼 의료서비스, 정치적 갈등, 전쟁, 식량 부족, 폭력, 차별, 빈곤 등을 지적했다. 여기에 사회적 관계 단절까지 더해져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어린 시절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품행장애, 원인 불명의 지적장애가 많았다. 이들 질환은 여아보다 남아에게서 발병률이 높았다.
청소년기에는 불안장애와 주요우울장애가 가장 빈번했다. 특히 정신질환 부담은 15~19세에 최고조에 달했다. '세계 질병 부담 연구(GBD)' 역사상 청소년기에 정점을 찍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항상 중년층에서 발생률이 가장 높았다.
10대는 교육, 취업, 인간관계 등 삶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발달 시기다. 이때 뇌 발달과 사회적 정체성 형성이 방해받으면 평생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2023년 기준 여성 환자는 6억2000만명, 남성 환자는 5억5200만명이다.
대부분 질환이 여성에게 더 흔했지만, 자폐증, 품행장애, ADHD, 인격장애, 원인 불명의 지적장애는 남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났다.
여성이 정신질환에 더 취약한 이유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가사와 육아 부담, 사회적 불평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990년부터 2023년 사이 지구촌 모든 지역에서 정신질환자가 증가했다. 1990년 대비 불안장애는 158%, 우울증은 131% 늘었고, 조사한 12가지 정신질환 모두에서 환자가 증가했다.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질환도 결코 적지 않다. 2023년 한 해에만 거식증 약 400만명, 폭식증 1400만명, 조현병 2600만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네덜란드, 포르투갈, 호주가 정신질환 부담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혔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과 남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부담률이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치료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2021년 GBD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우울장애 환자 중 최소한의 적절한 치료라도 받은 비율은 겨우 9%다. 환자 10명 중 9명이 방치된 셈이다.
치료율이 30%를 넘는 국가는 호주, 벨기에, 캐나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한국 등 단 7개국뿐이다. 90개국에서는 치료율이 5%도 되지 않는다.
정신질환은 환자 가족과 간병인에게 고통을 주고, 사회적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병원과 정부가 감당해야 할 비용도 크게 늘어난다.
연구팀은 "전 세계 정신질환 부담이 우려스러운 단계로 가고 있다"며 "소득이 낮은 국가의 정신건강 요구에 응답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강조했다.
정신건강 시스템에 지속적 투자와 치료 접근성 개선, 취약계층을 위한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식단 관리,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을 권했다.
취미 생활, 일과 삶의 균형, 일상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지속적 교류도 중요한 예방책이다.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진료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