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세 제도의 미래와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해 파격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부동산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8일 이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세 제도에 대해 "대한민국에만 있는 일종의 사금융"이라며 "결국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가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한국 특유의 주거 방식인 전세가 장기적으로 소멸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급이 나온 것이다.
전세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 없이 거주하는 제도로, 임대인이 보증금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금리가 낮을수록 전세가가 상승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2022~2023년 수만 건의 전세 사기 피해가 발생하면서 구조적 불안정성이 드러났다. 피해액은 수조 원대로 추산된다.
이 대통령은 "전세 대출을 많이 해 준 게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이고, 전세 사기도 생겼다"며 "정상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접적인 전세 폐지 정책은 아니지만, 현 정부가 전세 중심 임대차 구조를 월세·공공임대 체계로 전환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전세 소멸론을 둘러싸고 여론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찬성 측은 전세 제도의 구조적 위험성을 근거로 든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무이자로 활용하는 구조에서 금리 변동이나 집값 하락 시 임차인이 피해를 떠안는다는 것이다. 수만 건의 전세 사기 피해가 이를 증명한다는 입장이다.
반대 측은 월세 전환으로 인한 주거비 부담 증가를 우려한다. 전세는 목돈만 있으면 월 고정 지출 없이 거주할 수 있어 중산층 이하 가구의 유일한 저비용 주거 수단이었다. 양질의 공공임대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세가 급속히 줄어들면 서민 주거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보유세 강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 보유세가 대체로 낮다, 많이 사 모아도 부담이 별로 없다"고 지적하며 "거주 용도로 주택을 가지고 있는 건 보호해야 하지만, 그게 거의 사치품화 돼 있다면 서구 선진국에서 하는 것만큼 보유 부담을 갖게 하는 게 맞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주요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다. OECD 통계 기준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 비중은 GDP 대비 1%대 초반으로, 영국(약 3%)이나 미국(약 2.5~3%)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다주택자의 장기 보유 시 세 부담이 크지 않아 투기 수요를 자극해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 공화국을 탈피하는 게 이 나라가 살아남는 길"이라며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자꾸 오르면 언젠간 터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자산 거품의 위험성을 직접 언급하며 세제·금융·규제를 동시에 손보겠다는 패키지 개편 의지를 드러냈다.
구체적인 정책 일정도 제시됐다. 이 대통령은 "세제, 금융, 규제, 공급 이런 것들을 조만간에 정리해서 한꺼번에 발표하려 한다"고 밝혔다. 세제 개편은 내년도 예산 편성 시기인 7월에 처리하고, 공급 확대 정책은 그보다 앞서 발표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2022~2024년 이 3년 동안에 공급이 확 줄었다"고 진단했다. 재건축·재개발 인가 감소와 착공량 축소로 공급 부족이 현재의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해당 기간 주택 인허가 물량은 연간 수십만 가구 수준에서 눈에 띄게 감소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로 매물과 전세 물량이 줄었다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서는 정면 반박했다.
이 대통령은 "무주택자가 집을 구매하면서 수요가 줄어든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것 때문에 전세 물량이 부족해서 폭등했다는 건 그런 상황을 원하는 사람들이 만든 논리"라고 말했다. "통계적으로 보면 그렇게 대폭등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전세 가격 급등을 체감하는 임차인들의 인식과 정부 통계 사이의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통계 집계 방식이나 지역별 편차에 따라 체감 물가와 공식 수치가 달라질 수 있어, 정부의 공급 확대 정책이 실제 임차 시장에 언제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다.
이 대통령은 6·3 지방선거에서 부동산 정책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자평했다. "1월부터 소위 말하는 구두 개입을 통해서 이걸 눌러놓지 않았으면 엄청나게 폭등했을 것"이라며 선제적 시장 개입의 효과를 강조했다. "서울 전역으로 따지면 부동산 정책에 대해 언제나 욕을 먹었지만, 한 50%는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라며 나쁜 영향보다 좋은 영향이 더 컸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향후 공공 공급 방향과 관련해서는 "임대를 싸게 좋은 곳에, 평범한 중산층 정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좋은 품질의 것으로 공급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간 공공임대가 입지·품질 면에서 민간 주택에 비해 낮다는 인식이 강했던 점을 고려해, 공공임대의 질적 수준을 민간과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세 제도 축소, 보유세 강화, 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공급 확대, 고품질 공공임대 확충이라는 큰 그림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곽을 드러냈다. 세부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시장 파급력은 7월 세제 발표 이후 본격적인 검증대에 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