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 방한 첫날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 국내 주요 기업인들과 서울 시내에서 만찬 회동을 갖는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오후 전세기 편으로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입국할 예정이다. 방한 첫 일정은 서울 시내 PC방 'T1 베이스 캠프' 방문이다. 이곳에서 페이커(Faker, 이상혁)를 비롯한 T1 리그 오브 레전드(LoL) 선수단을 만난다.
저녁에는 서울 시내에서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과 만찬을 하며 방한 일정을 이어간다.
이번 만찬은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또는 중구 을지로 등 번화가의 삼겹살 음식점에서 열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른바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이다. 애초 성동구 성수동의 삼겹살 음식점이 회동 장소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안전 관리와 현장 여건 등을 고려해 홍대입구 일대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산은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맡을 것으로 알려진다. 만찬 장소로 거론되는 음식점에 네이버페이가 설치돼 있어, 이 의장이 직접 네이버페이로 결제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 반도체와 로봇, 데이터센터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네이버의 결제 서비스까지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셈이다.
황 CEO는 지난해 방한 때도 대중적인 장소에서 국내 총수들과 만났다. 당시 그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회장과 만찬을 했다. 이 자리는 '깐부 회동'으로 불리며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번에도 삼겹살과 소주를 곁들인 공개형 회동이 추진되면서 황 CEO 특유의 소탈한 행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날 만찬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AI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로봇, 피지컬 AI 등 협력 방안이 폭넓게 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에 서 있는 만큼, 한국 주요 그룹 입장에서도 황 CEO와의 직접 접점은 공급망과 신사업 전략을 동시에 확인하는 자리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통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의 핵심 부품인 HBM을 공급하고 있다. 황 CEO는 최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정보기술(IT) 전시회 '컴퓨텍스 2026'에서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HBM 웨이퍼에 "더 많이 만들어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사인을 남기기도 했다.
SK그룹은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통신 인프라를 결합한 AI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HBM 공급뿐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운영, 전력 인프라, 통신망까지 연결되는 구조여서 엔비디아와의 협력 범위가 반도체를 넘어 인프라 전반으로 넓어질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피지컬 AI 분야에서 엔비디아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는 지난해 '깐부 회동' 이후 국내 피지컬 AI 역량 고도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현대차그룹은 30억달러를 투자해 국내에 엔비디아 AI 기술 센터와 현대차그룹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고도화 과정에서도 엔비디아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로봇을 묶는 현대차그룹의 미래 사업 구상에서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와 로보틱스 플랫폼은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LG그룹도 로봇과 AI 인프라 분야에서 엔비디아와 접점을 넓히고 있다. LG전자는 엔비디아의 범용 휴머노이드 추론 모델인 '아이작 GR00T(그루트)'를 기반으로 자체 피지컬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엔비디아 로봇 개발 플랫폼을 활용한 지능형 로봇 현장 실증도 진행 중이다.
LG전자는 AI 데이터센터용 냉각 솔루션과 냉난방공조(HVAC) 사업도 키우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전력과 발열 관리 수요가 커지는 만큼, LG전자의 냉각·공조 사업은 엔비디아 AI 인프라 생태계와 맞물릴 수 있다. LG AI연구원, LG이노텍, LG유플러스 등도 AI 모델, 로봇 센싱, 반도체 기판, 클라우드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거론된다.
네이버는 로봇, 클라우드, 디지털트윈, 5G 특화망 등 미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네이버 제2사옥 1784는 로봇 친화형 빌딩으로 조성됐고, 네이버는 클라우드와 디지털트윈 기술을 묶어 기업·공공 영역으로 사업을 넓혀 왔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AI 인프라, 로봇,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네이버와의 협력 여지가 있다.
황 CEO의 방한 일정은 재계 회동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주말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두산 베어스 홈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설 예정이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시타자로 함께 나서는 일정도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도 엔비디아와 접점이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엔비디아의 AI·로보틱스 인프라를 활용해 산업 현장용 로봇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 ㈜두산 전자BG는 엔비디아에 AI 가속기의 핵심 소재인 하이엔드 동박적층판(CCL)을 공급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AI 데이터센터 확대 흐름 속에서 발전용 가스터빈 수주를 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