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27일(수)

여왕벌 잃은 말벌 사회가 파산 안 하고 버틴 반전 이유

말벌 사회에서 군주가 실종되는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체제가 붕괴하지 않고 유지되는 독특한 생존 메커니즘이 학계에 보고됐다.


지난 25일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팀은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말벌류인 '열대 쌍살벌' 군체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동물행동학'에 발표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열대 쌍살벌 군체는 평소 한 마리의 여왕벌이 번식을 독점하지만, 잠재적 번식 능력을 갖춘 다른 암컷 일벌들이 언제든 차기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경쟁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실제 연구팀이 인위적으로 여왕벌을 제거하자 벌집은 순식간에 극심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암컷 벌들이 여왕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물고 쏘는 전면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외역에 나섰던 일벌들까지 일손을 놓고 싸움판에 가세하면서 여왕벌이 사라진 지 24시간 만에 군체 내 공격 행동은 평소보다 10배나 급증했고, 전체 구성원의 41%가 난투극에 동참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대혼란 속에서도 벌집의 핵심 기능이 마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전의 유혹을 뿌리친 일부 개체들이 먹이 활동을 지속하고 애벌레를 사육하며 공동체를 지탱했다. 특히 권력 다툼 탓에 기존 조달 인력이 급감하자, 평소 집안일을 기피하던 무리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pixabay


조사 결과 여왕벌 실종 이후 먹이 전선에 투입된 벌의 69%는 이전에 활동 기록이 전혀 없던 개체들로 확인됐다. 군체의 파산을 막아낸 '숨은 일꾼'들의 유연한 역할 분담 체계가 입증된 셈이다.


이들이 약자여서 사태 관망을 선택한 것도 아니다. 분석 결과 몸집이나 기존 서열에 따라 전투조와 노동조가 나뉘는 일관된 패턴은 발견되지 않았다.


개체들이 유전적으로 고정된 임무 수행 방식에서 탈피해 환경 변화에 맞춰 주도적으로 행동을 결정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승계 서열이 명확해 2인자가 손쉽게 권력을 이어받는 여타 종과 달리, 다수 암컷이 동시다발적으로 격돌하는 열대 쌍살벌만의 위기관리 프로세스는 생태학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연구진은 "일부가 권력 다툼을 벌이는 동안에도, 조용히 필수 노동을 책임진 개체들 덕분에 군체가 유지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