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23일(토)

6·25전쟁 美 참전용사가 '폐허에서 대도시' 된 한국 보고 후배들에게 남긴 조언

미국 전쟁부(전 국방부)가 현재 96세인 6·25 전쟁 참전용사의 생애를 집중 조명했다.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한 이 노병은 "잔해뿐이던 곳이 미국 대도시처럼 바뀌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22일(현지시간) 미 육군 전쟁부에 따르면, 한국전쟁 참전용사 스탠리 마르티네즈 전 육군 하사가 현재 캘리포니아주 엘센트로에서 아내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마르티네즈는 1930년대 뉴멕시코주 탄광 노동자 가정에서 10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그는 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그의 아버지는 재혼 없이 혼자서 열 명의 자녀를 모두 키워냈다.


1947년 마르티네즈는 현재 거주지인 엘센트로로 이주했다.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에도 징병제를 계속 시행하고 있었다.


6·25 전쟁 참전용사인 스탠리 마르티네즈(96) 전 미국 육군 하사 / 미 전쟁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이 참전을 결정했고, 마르티네즈 역시 징집 대상이 됐다.


그에게는 2차 대전 중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형이 있었다. 마르티네즈는 '조국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신념으로 육군에 입대했다.


16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친 마르티네즈는 제7보병사단에 배치돼 일본을 경유해 한국 부산에 상륙했다.


그는 보병으로 분류됐지만 예상과 달리 전차 운전병으로 선발됐다. 한 장교가 트럭 운전 가능 여부를 묻자 "할 수 있다"고 답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전차 승무원으로서의 생활은 극도로 힘들었다. 마르티네즈는 전차 내부에서 잠을 자야 했고, 식사는 대부분 전투식량으로 해결해야 했다.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달에 단 두 차례뿐이었다.


1951년 가을 한국 복무 중이던 마르티네즈는 미국으로 복귀해 텍사스주 부대로 전속됐다. 텍사스 부대로 향하기 전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앨리스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올해 결혼 75주년을 맞는다.


수년 전 마르티네즈는 한국 정부가 주관하는 해외 참전용사 한국 재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해 전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스탠리 마르티네즈(96) 전 미국 육군 하사가 6·25 전쟁 당시 한국에서 전우들과 촬영한 사진을 미 전쟁부 관계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 미 전쟁부


그는 "폐허로 가득했던 마을들이 모두 대도시로 변모했다"며 "샌프란시스코와 닮아 있었다"고 당시 소감을 전했다.


마르티네즈가 소속됐던 미 육군 7사단은 1971년까지 한반도에 주둔하며 한국 방어 임무를 담당했으며, 현재는 미 동부 워싱턴주에 위치해 있다. 


전쟁부가 7사단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을 묻자 마르티네즈는 "(징병제가 있던 시절처럼) 모두가 몇 년 동안 의무적으로 군에서 복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훈련이 변화를 만들어낸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