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실손보험 손해율 개선을 위해 도입한 5세대 실손보험이 시장에서 좀처럼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보험료 부담을 낮춘 상품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급여 보장 축소에 대한 가입자들의 거부감이 크고, 보험사들 역시 적극적인 판매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2일 기준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등 손해보험사 9곳과 교보생명 등 생명보험사 7곳이 5세대 실손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5세대 실손보험은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질환 등 중증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장은 강화한 반면,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비급여 주사 등 과잉진료 논란이 컸던 비중증 비급여 항목의 보장은 대폭 줄인 것이 특징이다.
보험료는 기존 1·2세대 실손보험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고, 4세대 실손보험과 비교해도 약 30% 저렴하다. 임신·출산 관련 급여 의료비 보장을 신설하는 등 정책적 기능도 일부 강화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핵심은 보험료 인하보다 보장 축소에 가깝다.
비중증 비급여 항목의 자기부담률은 기존 30%에서 50%로 높아졌고, 보장 한도도 줄었다. 병원 이용이 잦거나 도수치료, 주사치료 등 비급여 진료를 자주 이용해온 가입자 입장에서는 전환 매력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자기부담금이 낮고 보장 범위가 넓은 초기 세대 실손보험에 대한 가입자 만족도가 여전히 높아 5세대 실손보험으로의 전환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의료 이용 빈도가 높은 가입자일수록 기존 상품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보험료를 일부 더 내더라도 보장 폭이 넓은 상품을 고수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5세대 실손보험의 부진을 단순히 소비자의 선택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실손보험은 1세대부터 5세대까지 개편을 거치며 비급여 과잉 이용 억제와 손해율 개선을 목표로 삼아왔지만, 병원과 환자, 브로커로 이어지는 비급여 진료 관리 구조는 여전히 느슨하다는 것이다.
비급여 가격 표준화, 관리급여 확대, 보험료 규제 완화 등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면 새 상품을 출시하는 것만으로 손해율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장 축소를 통해 소비자 이용을 줄이는 방식만으로는 비급여 진료 시장의 근본적인 왜곡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판매 현장도 적극적이지 않다. 보험설계사들은 신규 전환 영업보다 기존 고객 관리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실손보험 전환 계약은 일반 보장성보험 신계약과 비교해 수수료 매력이 크지 않고, 세대별 보장 구조 차이를 설명하는 과정도 복잡하다.
전환 이후 소비자가 예상보다 큰 보장 축소를 체감할 경우 민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부담이다.
일부 보험사는 이미 판매 채널을 축소하고 있다. 삼성생명과 NH농협생명 등은 최근 손해율 관리를 이유로 법인보험대리점(GA)을 통한 5세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상품을 출시했지만 적극적인 확산보다는 손해율 관리와 민원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5세대 실손보험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신상품 출시를 넘어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보장 수준을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도 보험료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설계, 비급여 진료 관리 강화,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전환 유인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시행 예정인 계약 전환 할인 제도와 선택형 할인 특약이 실제 전환 유인으로 작동할지가 5세대 실손보험 정착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