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업계에서 VIP(Very Important Person)는 단순한 우수 고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경기 변동에도 소비 여력이 큰 VIP 고객은 백화점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층으로 꼽힌다.
국내 주요 백화점들은 명품 브랜드 유치와 전용 서비스 경쟁을 넘어,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한 '경험 설계'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
이 가운데 롯데백화점은 VIP 경험 자체를 백화점 밖으로 확장하는 전략으로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경쟁사인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VIP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세계백화점은 VIP 전용 큐레이션 플랫폼 '더 쇼케이스'를 통해 희소성과 독점성에 집중하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은 이곳에 글로벌 럭셔리 슈퍼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서울' 한정판 차량이나 10억 원대 스웨덴 왕실 침대 브랜드 '해스텐스' 최상위 모델 등을 선보이며 '자사 백화점에서만 살 수 있는 경험'을 강조했다. 희소 상품을 기반으로 한 과시성과 독점 구매 경험이 핵심 축이다.
현대백화점은 온라인 VIP 전용 채널 'RSVP'를 중심으로 보다 폐쇄적이고 조용한 프리미엄 전략에 무게를 뒀다. 특정 VIP 등급만 접근 가능한 구조를 통해 선별된 고객만의 프라이빗 경험을 강화했다.
모바일 기반 라이브 방송과 트렁크쇼 등을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도 VIP만의 감각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이 '백화점 안'에서의 VIP 경험 강화에 집중했다면, 롯데백화점은 한발 더 나아가 VIP 경험 자체를 백화점 밖으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 롯데백화점은 기존 VIP 프로그램 '에비뉴엘'을 여행·미식·문화 중심의 체험형 콘텐츠 VIP 서비스 '에비뉴엘 큐레이션' 체제로 개편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는 6월 진행되는 울릉도 프라이빗 프로그램이다. 롯데백화점은 울릉도 최고급 리조트 '코스모스 빌라쏘메'에서 정호영 셰프의 프라이빗 다이닝과 와인 페어링, BMW 7시리즈 기반 시닉 드라이브 등을 결합한 체험형 콘텐츠를 운영한다.
단순한 쇼핑 혜택을 넘어 여행·이동·식사까지 하나의 프리미엄 경험으로 묶어냄으로써 VIP 고객의 시간을 능동적으로 설계하고 있는 셈이다.
SC제일은행과의 협업 역시 같은 흐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14일 롯데백화점은 SC제일은행과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맺고 VIP 고객 대상 자산관리·금융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유통과 금융의 경계를 넘어 백화점에 머물던 VIP 고객 경험을 일상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적극적인 행보다.
롯데의 이런 공격적 전략에는 그룹 구조도 한몫한다. 호텔·면세점·식음·레저·관광 등 다양한 계열사를 보유한 만큼 VIP 경험을 쇼핑 밖으로 확장하기 유리한 구조라는 평가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의 VIP 콘텐츠 상당수는 시그니엘, 호텔, 프리미엄 다이닝, 관광 콘텐츠 등 그룹 자산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백화점 VIP가 그룹 안에 오래 머무르면서 '롯데 VIP'로 확장되는 전략이다.
명품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초고액 자산가들의 관심 역시 '소유'보다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백화점 VIP 경쟁의 핵심이 상품 자체보다 고객의 일상과 시간을 얼마나 깊게 점유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