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 상태에서도 뇌가 외부 소리를 인식하고 단어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뇌의 특정 부위는 여전히 활발하게 작동하며, 들려오는 말을 단순한 음향이 아닌 의미 있는 정보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미국 베일러 의대와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 공동 연구진은 6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같은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뇌전증으로 측두엽 앞부분 절제술을 받는 환자 7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프로포폴 전신마취 상태에서 해마에 초고밀도 신경 전극을 삽입해 신경세포의 실시간 활동을 관찰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환자 3명에게 반복적인 표준음과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이상음을 들려줬다.
마취된 상태임에도 해마의 다수 신경세포가 소리에 반응을 보였고, 반복되는 소리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다른 소리를 명확히 구별했다.
약 10분간 진행된 실험 동안 해마 신경세포 집단의 구분 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정교해졌다. 신경세포들이 '다른 소리'를 더 정확하게 분리해내는 방향으로 반응 패턴을 조정한 것이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결과는 언어 인식 실험에서 확인됐다. 연구진은 마취 상태의 환자 4명에게 10~20분 길이의 팟캐스트를 들려주고, 각 단어가 나올 때마다 해마 신경세포의 반응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신경세포의 반응 패턴만으로도 환자가 들은 단어가 사람 이름인지, 장소명인지, 감정 표현인지, 숫자인지를 상당 부분 구분할 수 있었다. 명사, 대명사, 전치사, 형용사 등 품사별로도 신경세포 반응에 차이가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수술이 끝난 후 환자들은 수술 중 들었던 소리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뇌는 분명히 소리를 듣고 처리했지만, 이를 기억으로 저장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마취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뇌가 소리 변화와 언어의 의미 정보를 처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의식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뇌 깊숙한 곳의 신경세포들이 소리를 구분하고, 단어의 의미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다만 실험 대상자가 7명에 불과하고 프로포폴 마취 상태에서만 관찰한 결과여서, 다른 마취제나 수면, 혼수 상태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