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콘돔과 정관수술에만 의존해왔던 남성 피임법에 혁신적인 대안이 등장할 가능성이 열렸다. 호르몬 부작용 없이 정자 생성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새로운 피임 기술이 동물실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했다.
지난 8일(현지 시간) 학계와 외신에 따르면 미국 코넬대 폴라 코언 교수 연구팀은 호르몬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정자 생성을 가역적으로 중단하는 기전을 발표했다. 연구 논문은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게재됐다.
지금까지 남성용 피임약 개발이 더딘 진전을 보인 이유는 호르몬 관련 부작용 때문이었다.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기존 접근법은 여드름, 체중 증가, 성욕 감소 등의 부작용을 야기할 위험이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호르몬이 아닌 정자 세포 형성 과정인 감수분열에 집중했다. 'JQ1'이라는 저분자 화합물을 활용해 정자 형성에 필수적인 특정 단백질 복합체를 선택적으로 차단하여, 정자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다.
실험에 참여한 수컷 쥐들은 약물 투여 후 암컷과의 교배에서 임신이 발생하지 않아 피임 효과가 입증됐다. 특히 고환 내 줄기세포에는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정자 형성 과정만을 억제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가역성 또한 확인됐다. 약물 투여를 중단한 지 약 6주가 지나면서부터 정상적인 정자 생성이 재개됐으며, 이후 태어난 새끼들에서는 신체적이나 행동적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다음 세대의 생식 능력에도 영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일정 기간 효과가 유지되는 주사제나 피부 부착형 패치 형태의 제품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언 교수는 기술 상용화를 위한 바이오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 중이며, 회사 설립 후 2년 내 임상시험 착수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현재 연구는 동물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어, 인간 적용을 위한 안전성 검증과 임상시험이 필요한 상황이다. 코언 교수는 "이번 연구는 남성이 자신의 생식 능력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가역적 방법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호르몬 부작용 없는 피임법 구현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