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게 건넨 북한 관련 발언으로 간첩 누명을 썼던 80년대 공안사건 피해자가 사후 32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7일 부산지법 형사4-1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던 고 박모 씨의 재심 선고 공판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일부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고, 나머지 증거를 종합해도 피고인의 행위가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무죄 판결의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일본 유학파 출신으로 부산에서 종이봉투 업체를 운영하던 박 씨는 1980년대 초 일본 방송을 듣고 이웃들에게 "미군이 물러나야 통일이 된다", "북한의 의료·교육 제도가 낫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안기부에 체포됐다. 당시 법원은 이를 찬양·고무죄로 판단해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박 씨는 만기 출소 후에도 형사들의 감시 속에 살아야 했으며, 그 고통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대물림됐다. 이번 재심은 손녀 박모 씨가 제주 조작사건기념관을 방문한 뒤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을 거쳐 이번 무죄 판결까지 끌어냈다.
손녀 박 씨는 판결 후 "늦게나마 무죄를 선고받아 간첩의 자식,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어 다행이다"라며 "아버지와 형제분들이 수십 년간 고통받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억울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