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08일(수)

고유가 여파에 항공편 잇단 취소... "숙박비 날렸다" 소비자 피해 속출

중동 전쟁 장기화로 항공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항공사들이 잇따라 항공편을 취소하고 있어 해외여행객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7일 뉴스1에 따르면 스리랑카 콜롬보 거주 한아름 씨(46·여)는 지난 3일 에어아시아로부터 한국행 항공권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GettyimagesKorea



한 씨는 가족 방문을 위해 예약했던 항공편이 취소되자 급하게 새 항공편을 찾아야 했다. 여행까지 3주 남짓 남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서 기존 항공권보다 100만원 넘게 비싼 177만 1442원(1160달러)을 지불해야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 씨가 받은 취소 통보가 2주 만에 벌써 두 번째라는 점이다. 한 씨는 지난달 19일 첫 번째 취소 통보를 받고 여행 일정을 일주일 미뤄 항공권을 다시 예약했지만, 또다시 일방적인 비행 취소 연락을 받았다.


한 씨는 "한국에서 콜롬보로 돌아오는 항공권은 다른 항공사인데, 그 항공권도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며 "승객이 일방적으로 예매를 취소할 때는 환불 불가, 위약금 부과 등 많은 제약이 있었는데, 항공사가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갑작스럽게 항공편을 취소당한 여행객들은 이미 지불한 숙박비 등을 그대로 날리거나,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더 비싼 새 항공권을 구매하는 등 피해를 보고 있다.


뉴스1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지난달 말(3월 21~17일) 항공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195.19달러로, 중동전쟁 이전인 2월 21~27일 평균 99.4달러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항공유는 항공사 전체 비용 지출 중 30%가량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원가 부담이 커진 항공사들은 최근 다수 노선 운항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에어로케이는 4~6월 사이 청주발 이바라키·나리타·클락·울란바토르 등 노선에 대해, 에어부산은 4월 부산~다낭·세부·괌 등 노선에 대해 일부 비운항 계획을 공지했다. 에어프레미아, 진에어, 에어서울 등도 노선을 감편했고, 아시아나항공마저 4~5월 일부 노선 운항을 취소했다.


문제는 항공권을 갑작스럽게 취소당한 시민들이 모든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취소된 항공편에 대한 환불을 받더라도, 틀어진 여행에 대한 보상 조치는 없다. 이미 결제가 완료된 해외 숙박비, 차량 렌트비 등 기타 경비는 환불받지 못하고 그대로 손실을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4월 말 나트랑 여행을 계획했던 김 모 씨(34·여)는 항공사로부터 귀국 일정을 하루 앞당겨 비행기표를 변경하거나 아예 항공권을 취소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결국 귀국 전날 예약해 둔 고가 리조트 숙박비는 환불받지 못한 채 귀국 일정을 하루 앞당기기로 했다.


김 씨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여행이라서 최고급 리조트를 예약했는데, 항공사가 비행 일정을 마음대로 바꿔버리니 50만원가량의 1박 숙박비는 그대로 날리게 됐다"며 "리조트 측에 연락하니 항공사의 일방적 비행 취소는 천재지변 등에 해당하지 않아 숙박비를 환불해 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여행사나 예약 대행 플랫폼을 통해 항공권을 예매한 경우엔 항공권 환불도 오래 걸리고, 항공사 사정으로 인한 항공권 취소임에도 대체 항공편을 안내받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발권 수수료를 끝내 환불받지 못한 이들도 많다.


5월에 대구에서 다낭으로 출발하는 티웨이 항공권을 대행사를 통해 구매한 40대 이 모 씨는 대체 항공편이 없다는 '배째라' 식 통보를 받았다. 이 씨는 "대행사를 통해서 항공권을 구매하는 게 몇만 원 더 싸길래 그렇게 했는데 후회막심"이라며 "숙소 예약이 취소되지 않아 인천으로 출입국하는 항공편이라도 찾아달라 했는데 대행사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고다 플랫폼을 통해 항공권을 예매했던 30대 진 모 씨는 5월 항공편 운항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고 아고다 고객센터에 연락했지만 "환불이 되더라도 3~6개월 소요될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 진 씨는 "항공사 잘못으로 취소된 항공편에 대해서 돈을 돌려받으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 SNS 등에선 항공편이 취소된 소비자들의 푸념이 이어지고 있다. 178만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네이버 카페 '다낭도깨비'에는 "항공권이 취소돼서 환불 요청을 했더니 '수화물은 환불이 안 된다', '크레딧으로만 환불 된다' 등 말하며 결국 전화 30번 넘게 밤낮으로 해서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항공사가 이미 발권된 항공권을 취소하는 것은 사실상 기업의 이익 때문이다. 유가에 따른 유류할증료 변동은 이미 결제가 끝난 항공권에는 영향을 줄 수가 없어, 항공사들이 차라리 수익성이 낮은 항공편을 줄이거나 노선을 중단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4월 유류할증료는 전달 대비 12단계 뛴 18단계까지 치솟았고, 5월 유류할증료는 현행 최고 단계인 33단계를 적용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항공사들의 항공편 감축에 따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법적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국제 항공편에 적용되는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협약'에 따르면 항공사가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다 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항공사들이 제안하는 환불·대체 항공편 방안 등이 '합리적인 조치'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전문가는 정부 당국이 일방적으로 항공편을 취소시키는 항공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성수기엔 돈을 벌고 비성수기엔 조금 손해를 보는 건 기업 사정일 뿐이고, 손해를 보더라도 비행기를 띄우는 게 소비자와의 약속이고 신뢰"라며 "뚜렷한 명분 없이 항공편을 취소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가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항공편 취소에 따른 소비자 보호 조치 이행 여부를 이미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항공권 환불 지연이나 환불 불가 숙박비 등으로 인한 피해 등은 소비자가 한국소비자원에 구제를 신청할 순 있지만 구제 가능성은 낮다. 항공권 구매 시 항공사들이 항공 일정은 항공사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내용을 고지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유류할증료를 따로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유가가 올랐다고 해서 함부로 항공편을 취소해선 안 되지만, 항공 노선은 여러 사유로 변경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존재한다"며 "항공사가 운항을 하기로 해놓고 항공사 귀책으로 운항을 취소하면 환불해주거나 대체편을 제공해주도록 하고 있는데, 국토부는 소비자 보호 조치가 충분히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구제나 상담을 신청할 순 있는데 전쟁에 의한 상황이다 보니 구체적인 지연에 대한 보상 여부는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