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31일(화)

"비싼 차 탈수록 무례하다?"... 전문가들 분석한 '차부심'과 '빌런 운전자'의 상관관계

서울연구원이 서울 시민 2000명을 조사한 결과 고급차 소유자일수록 빌런 주차, 과속 등 문제 운전 행동을 용인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났다.


지난 29일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급 자동차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려는 운전자일수록 문제가 되는 운전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연구원 스마트교통연구실의 이창 연구위원과 김영범 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서울시민이 자동차에 부여하는 상징과 애착에 따른 사회적영향 분석' 보고서는 '차부심'이 운전 행태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국내 최초 연구다. 차부심은 자동차에 대한 상징성과 애착을 강하게 갖는다는 의미의 자동차 자부심을 줄인 말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뉴스1


연구팀은 서울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자동차의 상징성이 이용 행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했다.


차량 가격을 기준으로 2024년 현재가치 3945만원 초과를 상위 그룹(607명), 2194만원 이하를 하위 그룹(591명)으로 분류했다. 설문 대상자 중 수입차 소유자는 약 20%(405명), 국산차 소유자는 약 80%(1595명)로 서울시 수입차 등록 비율과 비슷하게 구성했다.


분석 결과 차부심 정도는 상위 그룹이 3.42점(5점 만점)으로 하위 그룹(2.97점)보다 현저히 높았다.


비싼 차를 소유한 사람일수록 "내 차가 나를 표현한다", "고급차 타는 사람이 더 존중받는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고급차를 타는 사람이 더 존중받는다"는 질문에 수입차 소유자의 51.9%가 긍정적으로 답해 국산차 소유자(44.3%)보다 7.6%포인트 높았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pixabay


연구팀은 차부심이 강한 사람의 문제 운전 행동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실험적 비넷방법'을 활용했다.


직접 "나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라고 묻는 대신 제삼자 관점에서 "이게 괜찮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질문하는 방식이다. 다른 사람의 바람직하지 않은 운전 행동을 용인하는 정도가 클수록 본인도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가정했다.


설문 결과 끼어들기, 빌런 주차, 과속, 교차로 꼬리물기, 깜빡이 없는 차선 변경 등 10가지 항목 모두에서 차부심이 강할수록 문제 행동을 용인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빌런 주차, 깜빡이 없는 차선 변경, 우회전 후 횡단보도 무정차 통과, 과속운전, 보도 위 주차 순으로 용인 정도가 컸다.


고가 차량 소유자일수록, 차부심이 클수록 도로 위 주정차 같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행위보다 빌런 주차처럼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운전 행동을 용인하는 정도가 더 높았다.


이창 연구위원은 "빌런 주차의 계수 값이 가장 큰데, 차부심이 센 사람일수록 빌런 주차를 많이 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깜빡이 없이 차선을 바꾸는 것도 큰데, 차부심이 크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난 내 갈 길 가겠다는 경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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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차부심이 강한 사람도 대부분은 빌런주차를 용인하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용인하는 비율이 높았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전체 2000명 중 빌런 주차를 용인한 비율은 12.2%에 그쳤다.


자동차 사용량도 가격과 차부심에 비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 연령, 소득, 가구원 수 등 사회경제적 변수를 통제한 상황에서도 가격과 차부심 변수는 출퇴근, 여가, 지인 방문, 저녁 약속 등 모든 이동 상황에서 일관되게 자동차 사용 확률을 높이는 효과를 보였다.


차부심으로 인한 불필요한 운전은 탄소 배출을 늘려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서울시 자동차 1대당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6t이다.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이 중 걸어갈 수 있는 거리를 자동차로 이동해 배출하는 양은 약 10%(210㎏) 수준이다.


특별한 목적 없이 자동차를 타며 배출하는 양은 약 4%(9㎏)였다. 두 가지를 합치면 자동차 1대당 연간 300㎏의 온실가스를 차부심에 따른 차량 운전으로 배출하는 셈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연구팀은 이번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자동차에 대한 심리와 태도가 사회적 파급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교통정책도 이를 고려해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자동차에 상징을 부여하고 애착을 갖는 운전자는 다양한 상황에서 자동차를 더 많이, 더 자주 사용할 확률이 높고, 바람직하지 않은 운전행태를 용인하는 경향이 크다"며 "자동차에 애착을 갖기 때문에 자동차 사용량이 늘어나게 된다면, 그만큼 혼잡비용과 환경오염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동차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믿고 과도한 애착을 갖는 사람이 바람직하지 않은 운전행태를 범한다면, 도로 안전이 저해되고 사고 위험이 증가한다"며 "자동차 소유자가 자동차에 대해 갖는 생각은 단순히 태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혼잡통행료나 유류비 인상 같은 경제적 수단만으로는 자동차에 심리적 의미를 부여하는 운전자의 행태를 바꾸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기존 교통정책은 자동차를 소유한 인간을 합리적 주체로 보고, 물리적·시간적 비용에 영향을 미쳐 바람직한 교통행태를 유도하려 하지만 이런 심리적·정서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13일 발간한 '자동차를 사랑할 때 생기는 일들'의 표지 사진 / 서울연구원


연구팀은 "자동차 소유자의 생각·심리·태도 등 그동안 교통정책에서 다뤄지지 않은 비전통적 요소를 적용한 새로운 교통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서울연구원은 관련 보고서 내용을 쉽게 풀어쓴 단행본 〈자동차를 사랑할 때 생기는 일들〉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