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을 상대로 한 고문 수사로 악명 높았던 이근안 전 경감이 25일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26일 경기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전 경감은 최근 건강 악화로 서울 소재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던 중 숨을 거뒀다. 그는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재직하며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강압 수사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 전 경감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치안본부에서 대공수사업무를 담당하며 전기고문을 비롯한 각종 가혹행위로 피의자들로부터 허위자백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런 수사 방식으로 인해 '고문 기술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는 남민전 사건을 비롯해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고문 사건, 서울대 무림사건 등 주요 공안 사건들에 깊이 관여했다. 특히 서울대 무림사건에서의 활동으로 1981년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사 청산 작업이 본격화되자 이 전 경감은 1988년 수배령이 내려졌다.
그는 12년간 도피생활을 지속하다가 1999년 스스로 자수했다. 이후 고문 및 불법구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확정받고 복역했다.
출소 후 이 전 경감은 목사 자격을 취득해 종교활동에 전념했다. 공개 간증을 통해 과거 행위에 대한 반성 의지를 표명했지만, 피해자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은 그의 사과가 진정성이 부족하다며 보다 책임감 있는 참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는 생전 발간한 자서전에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쳐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자신의 고문 행위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에 대해서도 실제보다 과장되게 묘사됐다고 반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