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여파로 플라스틱과 비닐 제품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종량제 봉투 등 생활필수품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정부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가 24일 발표한 중동 전쟁 직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37개 기업 중 71.1%가 석유화학 업체로부터 합성수지 공급 축소 또는 중단 가능성 통보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원료 가격 인상 안내를 받은 업체 비율은 92.1%에 이르렀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추출되는 탄소화합물로, 플라스틱과 비닐 등 각종 석유화학 제품 생산의 기초 원료다. 국내 나프타 수입량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데, 중동 전쟁 이후 이란의 해협 봉쇄로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첫 주 배럴당 56.9달러(약 8만6000원)였던 나프타 국제가격은 지난주 129.7달러(약 19만6500원)까지 치솟아 127.9% 급등했다.
석유화학 대기업들은 이미 생산 조정에 들어갔다. LG화학은 이날 나프타 공급이 정상화될 때까지 여수산단 내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다른 대형 석유화학 업체들도 NCC 가동을 멈추거나 생산량을 줄이는 상황이다.
종량제봉투 제조업체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료 재고가 약 1개월분만 남아있다고 전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마트 여러 곳을 다녀도 종량제 봉투를 구할 수 없었다", "종량제 봉투를 사려고 했는데 1인당 2개 제한이라고 해서 놀랐다", "종량제 대란에 대비해 편의점을 돌며 수십 장을 확보했다" 등의 게시물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종량제봉투 전문 판매업체 '종량제닷컴'은 홈페이지에 "최근 국제 정세 영향으로 종량제봉투 제작부터 수급 및 입고 일정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공지사항을 게시했다.
시민 불안이 커지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개최해 나프타 등 에너지 수급 대응 방안을 공개했다. 산업부는 공급망지원센터를 통해 국민 생활과 직결된 30~40개 핵심 품목을 집중 모니터링한다고 밝혔다.
박동일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특정 품목 위기가 과도하게 부각돼 시장 혼란이나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하고 침착하게 관리해 나가겠다"며 "상황 변화에 맞춰 관리 품목을 탄력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도 전날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통해 종량제 쓰레기봉투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역시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발송해 종량제 봉투 재고량 현황 파악을 지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