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17일(화)

주한미군 카드 꺼내 호르무즈 '파병' 압박한 트럼프... 이재명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이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에 미온적인 동맹국들을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며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 규모를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 언급하는 등 동맹국을 거칠게 몰아붙이면서, 막대한 안보·경제적 파장이 담긴 '파병 청구서'를 받아 든 한국 정부의 외교적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 행정명령 서명식 직후 해외 지도자들이 이란 공격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그들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며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GettyimagesKorea


그는 "중국은 원유의 90%를 얻는다. 일본은 95%, 중국은 91%, 한국 역시 원유의 상당량을 그곳에서 들여온다"고 콕 집어 거론했다. 


한국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수입에 대한 의존도는 한국 62%, 일본 69%, 중국 49%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실제 수치와 거리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를 도와야 한다"며 "놀라운 점은 그들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파병을 망설이는 국가들을 직격했다.


동맹국에 주둔 중인 미군 규모를 의도적으로 과장해 압박의 지렛대로 삼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판한 데 이어, "우리는 일본에 4만5000명, 한국에 4만5000명, 독일에 4만5000명 등 각국에 약 5만 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 / 뉴스1


현재 공식적인 주한미군 규모가 2만 8500명 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실제와 차이가 있다. 


동맹국들이 미국의 군사적 우산 아래 있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파병 등 안보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14일에도 한국 등을 직접 거론하며 파병을 요구했고, "우리는 기억할 것"이라며 경고성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유독 동맹국들을 거칠게 몰아붙이며 조급함을 드러내는 배경에는 일촉즉발의 이란전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이란을 향한 최고조의 군사적 압박을 유지하면서도, 천문학적인 국방 예산과 희생이 뒤따르는 중동에서의 새로운 전면전은 피하고자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지난 3월 1일 바다에서 미 해군의 아리 버크급 유도 미사일 구축함 USS 토마스 허드너(DDG 116)가 에픽 퓨리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토마호크 육상 공격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 GettyimagesKorea


이란이 글로벌 원유 수급의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무기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미국 단독으로 그 위험과 비용을 떠안지 않겠다는 철저한 손익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다국적 연합 함대를 구축해 '미국 대 이란'의 갈등을 '국제사회 대 이란'의 구도로 전환하여 이란을 고립시키려 했으나, 동맹국들의 합류가 지연되자 초조한 속내를 숨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는 중동 정세 악화와 국내 여론을 의식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확답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거듭된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내 군함 파견을 거부할 경우, 한국은 거센 다중 복합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가 파병 거부를 '안보 무임승차'로 규정해 방위비 분담금(SMA) 협상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하거나, 한반도 내 전략자산 전개 등 안보 공조에 소극적으로 나설 우려가 있다. 


나아가 이러한 안보 불만은 통상 마찰로 튈 소지가 다분하다. 


지난 12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의 모습 / 뉴스1


안보와 무역을 연계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을 고려할 때, 한국의 핵심 대미 수출품인 자동차나 반도체, 철강 등에 기습적인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경제적 보복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독자적인 에너지 안보와 물류 공급망의 타격도 치명적이다. 


미군 주도의 호위 연합에 불참할 경우, 한국 원유 수입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 국적 상선들은 이란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단순한 해상 운임 및 보험료 급등을 넘어 국내 물류 산업의 연쇄적인 마비를 부르고, 유가상승과 맞물려 모빌리티 산업을 비롯한 실물 경제 전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선뜻 파병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복잡한 정치·외교적 셈법과 국민적 우려가 깊게 얽혀 있다. 


당장 '국제법을 위반하고 다자주의 안보 원칙에서 벗어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군사 행동에, 왜 한국이 이란과의 적대적 관계를 감수하며 뛰어들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회의론이 존재한다. 


호르무즈 해협 / gettyimagesBank


더욱이 '천안함 폭침의 악몽'이 여전히 국민들의 뇌리에 생생한 상황에서, 정작 미 해군은 전면에서 위험을 회피하려 하면서 우리 젊은 장병들을 화약고에 노출시키는 것에 대한 거센 정치적 비난도 감당하기 벅찬 과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처럼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를 우회하여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을 호르무즈 해협으로 임의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한국의 글로벌 안보 전략과 한미 안보 협력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속도보다는 최소한의 국민적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동맹의 균열과 통상 보복을 피하면서도 중동 내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해야 하는 외통수에 몰린 만큼, 미국의 명분을 세워주면서도 국익과 공급망을 지켜낼 수 있는 정교하고 유연한 외교적 묘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