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16일(월)

전 직원 대표한다더니 '반도체 몫' 올인?... 명분 흔들리는 삼성전자 노조 파업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이 요즘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메모리 가격이 치솟고 글로벌 수요는 꺾이는 데다 중국 업체들의 추격도 심상치 않아서다. 부장급에만 적용하던 '10시간 미만 비행 이코노미 탑승' 기준이 부사장급 이하 임원으로 확대된다. 인력 재배치나 희망퇴직 조건 완화 검토 얘기도 슬슬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 상황 속, 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 중이다. 과반 찬성이 나오면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핵심 요구는 초과이익성과급(OPI) 산정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급 상한을 없애라는 것이다.


회사는 조정 과정에서 임금 인상률 6.2%, 자사주 20주, 직급별 샐러리캡 상향, 최대 5억원 주택 대부, 장기근속 휴가 확대, DS 특별포상안 등을 제시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뉴스1


겉으로는 성과급 제도 문제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DX와 DS가 한 지붕 아래 있는 구조다. DX는 스마트폰, TV, 가전, PC, 네트워크를 맡고 DS는 메모리, 파운드리, 시스템LSI를 담당한다. 이름은 같은 회사지만 사업 성격과 수익 구조는 전혀 딴판이다.


지난해 4분기 실적만 봐도 그 온도 차가 얼마나 큰지 드러난다. 지난 1월 발표 기준으로 DS 영업이익은 16조 4천억원인 반면 DX는 1조 3천억원에 그쳤다. 전사 매출은 사상 최대였지만 내용은 반도체가 끌고 완제품은 겨우 버티는 모양새였다. DX 안에서도 생활가전은 계절적 비수기에 관세 영향까지 겹쳐 실적이 더 빠졌다.


올해 전망도 DX엔 우호적이지 않다. 美 IT 리서치 및 자문기업 가트너는 지난달(2월) 26일, 올해 말까지 D램과 SSD 가격이 합산 기준 130%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 여파로 PC 가격은 17%, 스마트폰은 13% 오르고 출하량은 PC가 10.4%, 스마트폰이 8.4% 줄 것으로 봤다. 부품을 매입해 완제품을 만드는 DX 입장에선 메모리 가격 급등은 호재가 아니라 원가 압박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투쟁의 중심은 어디 있을까. 지난 10일 기준 초기업노조 가입자 6만 5949명 가운데 DS 소속이 5만 1374명, 77.9%다. DX는 1만 4575명이다. 표와 동력이 DS 쪽에 몰려 있는 구조다. 파업 찬반투표에서 높은 찬성률이 나온다면, 노조 내 다수를 차지하는 DS를 중심으로 OPI 상한 폐지 여론이 작동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노조가 교섭 과정에서 제시한 성과급 수준도 이를 잘 보여준다. 업계에 따르면 DS 산하 메모리사업부에 1인당 평균 4억 5천만원, 파운드리·시스템LSI에 3억원 수준이 필요하다는 구체안이 오갔다고 한다. 회사가 공식 발표한 건 아니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노조의 교섭 프레임이 '전 직원 권익'보다는 '메모리 성과급 극대화'에 맞춰졌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뉴스1


회사가 OPI 상한 폐지에 난색을 보이는 이유도 그 맥락과 닿아 있다. 상한을 없애면 특정 사업부에 보상이 집중되고 그 혜택을 받기 어려운 나머지 사업부에선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전사 보상 질서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가 진짜 쟁점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DX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이번 교섭이 자신들을 사실상 빼놓고 진행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완전히 무시당한다는 박탈감이 크다"는 반응까지 나왔다는 보도도 있다. 전사 대표성을 내세우는 노조가 정작 DX 직원들에게는 "우리 얘기를 하는 조직인가" 싶은 의구심을 키우는 셈이다. 익명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벌써 'DX 대 DS' 설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문제는 단순한 노사 갈등이 아니다. DS가 반도체 호황을 타더라도 그 과실이 삼성전자 전체로 고르게 퍼지는 구조가 아니다. DX는 DS에서 만든 메모리를 부품으로 사다 쓰는 처지다. DS 실적이 좋을수록 DX 원가는 올라가는 구조라는 얘기다. 그런 DX에게 DS 성과급 극대화 요구에 동참하라고 하는 건, 같은 회사 안에서 한쪽이 다른 쪽 부담을 가중시키는 싸움에 손잡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올해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은 반도체 호황과 완제품 부진이 동시에 벌어지는 이중 구조다. 반도체 호황과 완제품 부진이 동시에 벌어지는 지금의 삼성전자에서, 노조 요구가 특정 사업부 성과 극대화에 쏠릴 경우 내부 연대보다 사업부 간 균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투쟁에서 노조가 얻어야 할 건 높은 찬성률 자체가 아니다. DS 다수 표로 DX의 현실을 밀어붙이는 방식이라면 파업 명분은 회사보다 내부에서 먼저 흔들릴 수 있다. DX가 긴축에 들어간 마당에 DS 성과급 극대화 요구만 불거지는 지금의 구도에서, 전사 대표성을 내세운 노조가 실제로는 DS 이해를 우선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은 앞으로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