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효 문화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부모 부양을 자녀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던 유교적 가치관이 불과 15년 만에 뒤바뀐 것으로 조사됐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제20차 한국복지패널 조사에 따르면, 부모를 모실 책임이 전적으로 자식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20.6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 5명 중 1명 수준으로, 절반 이상이 찬성했던 과거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이번 조사는 전국 7천3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응답자들의 의견을 5점 척도로 측정한 후 재분석했다. 조사 결과 부모 부양 책임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47.59%로 찬성 의견의 두 배를 넘어섰다. 중립적 입장을 취한 응답자는 31.78%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매우 동의한다'는 응답은 3.15%에 그쳤다. 반면 '반대한다'는 39.47%, '매우 반대한다'는 8.12%로 나타나 부정적 인식이 압도적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인식 변화가 경제적 여건과 무관하게 전 계층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찬성 비율은 20.66%, 일반 가구는 20.63%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반대 비율 역시 저소득층 49.17%, 일반 가구 47.37%로 사회 전반에서 부모 부양을 개인의 전적인 책임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뚜렷했다.
앞서 2007년 첫 조사에서는 부모 부양을 자녀 책임으로 보는 의견이 52.6%로 과반을 차지했다. 당시 반대 의견은 24.3%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3년 찬반 비율이 처음 역전된 이후 격차는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찬성 비율은 2016년과 2019년을 거치며 3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급락했고, 현재는 20% 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가족 내 돌봄에 대한 의식 변화는 육아 영역에서도 확인된다. 자녀를 집에서 어머니가 돌봐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응답이 34.12%로, 찬성 응답 33.83%를 소폭 앞섰다. 다만 이 부분에서는 소득 계층별 차이가 관찰됐다. 저소득층에서는 어머니의 직접 돌봄에 찬성하는 비율이 39.06%로 일반 가구의 33.11%보다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를 경제적 여건에 따른 보육 서비스 접근성 차이나 고용 환경의 영향으로 분석하고 있다.
복지에 대한 국민 인식 또한 변화하고 있다. 복지를 가난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선별적 복지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39.81%)가 찬성(33.36%)보다 많았고, 특히 일반 가구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응답이 41.65%로 뚜렷했다. 반면 저소득 가구에서는 선별적 복지에 찬성한다는 비율이 38.96%로 드러났다.
의료와 기초 보육 분야에 대해서는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압도적이었다. 국가 건강보험을 축소하고 민간 의료보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국민 70.50%가 반대했다. 찬성은 9.38%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한국 사회의 돌봄 패러다임이 가족 중심에서 국가적 책임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전통적인 효 문화가 급속히 약화되면서 노인 돌봄과 육아가 더 이상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사회의 공적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