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전 세계를 감동시킨 영화 한 편이 다시 극장가로 돌아옵니다. 구명보트에서 소년과 벵골호랑이가 마주하는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라이프 오브 파이'가 다음 달 25일 메가박스에서 단독 재개봉됩니다.
이안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2013년 1월 1일 국내 첫 개봉 이후 13년 만에 관객들과 재회하게 됩니다. 원작은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2001년 발표한 베스트셀러 소설 '파이 이야기'로,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700만 부 이상 판매된 화제작입니다.
소설 출간 직후부터 영상화 논의가 시작됐으며, 알폰소 쿠아론, M. 나이트 샤말란, 장 피에르 주네 등 유명 감독들이 후보로 거론됐습니다. 최종적으로 '와호장룡'과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원작자 얀 마텔은 "영화화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안 감독을 만나고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이안 감독은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어린이·동물·물·3D 등 영화 제작 시 피해야 할 모든 요소가 한 작품에 집약됐다"는 그의 말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도전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파이 역의 수라즈 샤르마는 촬영 당시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배우였지만, 실제 식사량을 조절하며 표류로 야위어진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영화 속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네 마리의 실제 벵골호랑이를 모델로 제작된 CG 캐릭터입니다. 근육의 세밀한 움직임까지 재현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파이와 보트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배경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됐지만, 처음부터 아이맥스 포맷을 염두에 두고 제작돼 '아바타' 이후 최고의 3D 체험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작품은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소년 파이 파텔이 가족과 함께 동물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주하던 중 태평양에서 난파당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화물선 침춤호가 폭풍우로 침몰하면서 구명보트에 탄 파이는 다친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그리고 보트 밑에 숨어있던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표류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물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파이와 호랑이만 남아 227일간 바다를 떠돕니다.
야광 해파리 떼가 밤바다를 수놓는 장면과 하늘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고요한 바다 위를 떠가는 보트의 모습은 개봉 당시부터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영상미로 평가받았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단순한 생존 드라마를 넘어섭니다. 성인이 된 파이가 한 작가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액자식 구조로 전개됩니다.
후반부에서 파이는 일본 보험회사 직원들에게 동물 대신 인간이 등장하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하이에나는 잔혹한 요리사, 얼룩말은 중국인 선원, 오랑우탄은 파이의 어머니라는 해석입니다. 이런 설정에서 리처드 파커가 파이의 분신이거나 극한 상황에서의 폭력성과 식인 행위의 상징이라는 분석이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명확히 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가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남긴 채 마무리됩니다. 이안 감독은 인터뷰에서 열린 결말 구조임을 밝혔으며, 이 작품이 단순한 반전 스릴러가 아닌 인간의 믿음과 종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설명했습니다.
흥행 실적도 인상적입니다. 제작비 1억2000만 달러로 제작된 이 작품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6억901만6565달러(약 8600억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북미에서 1억2498만7023달러를 기록했고, 해외 시장에서 특히 강력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중국·홍콩·대만에서 1억 달러 이상, 영국에서 4000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러시아, 멕시코, 호주, 독일, 일본에서도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외국 영화의 무덤이라 불리는 인도에서도 13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아바타'로 3D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이안 감독과 함께 3D 촬영 기법을 주제로 한 홍보 영상에 직접 출연할 정도로 당시 영화계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2013년 1월 1일 새해 첫날 개봉한 이 작품은 총 159만3463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3D 상영에 대한 높은 관심과 맞물려 바다, 폭풍, 야광 해파리, 고래 등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관객들의 체험 요소로 주목받았고, 가족과 청소년 관객층의 입소문을 통해 장기 상영으로 이어졌습니다. 2018년 4월에도 한 차례 재개봉된 바 있습니다.
비평계의 인정과 수상 실적도 화려합니다.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해 최다 수상작으로 감독상·촬영상·시각효과상·음악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습니다. 이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골든글로브상과 그래미상 등 주요 시상식에서도 수상 및 후보에 올랐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를 넘어 연극 무대로도 확장됐습니다. 영국에서 2019년 초연된 연극 버전은 올리비에상, 토니상 등을 수상하며 호평받았고, 국내에서는 2025년 12월부터 GS아트센터에서 박정민, 박강현 주연으로 초연이 진행 중입니다.
소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무대로 이어지는 이 작품의 지속적인 생명력이 이번 재개봉과 함께 다시 조명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