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24일 오전 발생한 화재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16세 여학생이 숨지고 가족 3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979년 준공된 노후 아파트의 소방시설 미비와 이중주차로 인한 소방차 진입 지연 등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18분경 은마아파트 14층 건물 가운데 8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불은 거실 주방 쪽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A양(16)이 베란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A양의 어머니 B씨(39)와 여동생 C양(13)은 얼굴 화상과 연기 흡입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위층 주민 1명도 연기 흡입 증상으로 병원에 이송됐습니다.
소방당국은 인력 143명과 장비 35대를 투입해 화재 발생 약 1시간 20여 분 만인 오전 7시 36분경 불을 완전히 진화했습니다. 당시 아파트 주민 약 70명이 자력으로 대피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화재 현장에서는 매캐한 탄내가 진동했고, 불이 난 8층 세대의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었으며 창틀도 크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최상층인 14층까지 외벽이 수직 방향으로 검게 그을린 흔적도 확인됐습니다.
소방당국이 공개한 베란다 사진에는 불에 타다 만 책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도 담겼습니다.
아래층 주민은 "밖에서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대피했다"며 "잠옷 차림으로 내려온 A양의 어머니가 소방관에게 '아이 한 명이 못 나왔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A양은 올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의과대학 진학을 꿈꾸던 학생으로, 화재 발생 닷새 전인 지난 19일경 이 아파트로 이사 온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에 위치한 은마아파트는 새 학기를 앞두고 학군을 고려한 전세 수요가 몰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9년 준공된 이 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1992년 소방법 개정으로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기 이전에 착공된 아파트 대부분이 화재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주택 화재 1만 602건에서 사망자 116명 전원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주택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안내 방송과 화재 경보가 울렸지만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이어졌습니다. 한 주민은 "방송은 듣지 못했고 바깥이 시끄러워 화재 사실을 알게 됐다"며 관리사무소 측에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소방차는 신고 접수 6분 만에 도착했지만, 아파트 내부 이중주차 차량으로 인해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 주민은 연합뉴스에 "은마아파트 주차난은 오래된 문제로 매일 이중주차가 이뤄지고, 주차를 막으려 설치한 안전봉을 둘러 주차하는 경우도 많다"며 "화재 당시 주민들이 차를 빼달라고 연락하고 차량을 직접 밀어 이동시키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12층에 거주하는 또 다른 주민은 "오전 5시경부터 환풍기를 통해 연기가 올라왔는데 순식간에 집 안에 검은 연기가 가득 찼다"며 "집에는 스프링클러도 없고 화재경보기가 있었지만 급히 대피하느라 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은마아파트는 약 4,400세대가 거주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노후 아파트 단지입니다. 1990년대 말부터 재건축이 추진됐지만 안전진단 문제와 조합 갈등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며 '강남 재건축의 상징'으로 불려 왔습니다. 지난해 9월 정비계획안이 확정되면서 2030년 49층, 5,893세대 규모로 재건축 착공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합동 감식을 진행하며 정확한 화재 원인과 당시 상황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방화 등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