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가 없으니 빨리 와달라"
23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에서 발생한 상황은 현재 구급차 오남용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소방관 3명이 "걸을 수 없다"는 119 신고를 받고 긴급 출동해 현장에 도착했지만, 바닥에 앉아 있던 50대 남성 신고자는 보행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구급대가 준비해온 간이침대는 사용되지 않은 채 역사 한쪽에 방치됐고, 출동한 소방관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신고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당 소방관은 "신고자의 몸 상태를 확인했지만 응급 상황으로 보이지 않아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경찰에 인계하기로 했다"며 "이렇게 비응급 상황에서 구급차를 부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119 신고로 구급차가 출동한 총 횟수는 332만4287건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 약 36%인 120만7780건은 출동 후 이송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거나 실제 환자가 현장에 없는 '미이송'으로 분류됐습니다. 전체 구급차 출동 건수 중 미이송 비율은 2019년 28%에서 2024년 36%로 8%포인트 증가한 상황입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는 구급차를 응급환자나 그 보호자,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이송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출동 전 신고 내용만으로는 응급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워 소방관들은 사실상 모든 구급차 호출 신고에 출동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특히 경미한 부상이나 병원 정기 진료를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진짜 응급환자를 위한 '골든타임' 대응에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됩니다. 서울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장모 소방관(45)은 "비응급 신고가 몇 건만 겹쳐도 인근 소방서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며 "이 경우 심정지 같은 중증 응급환자 대응이 10분 이상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사례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경남소방본부에 따르면 한 70대 남성은 지난 한 달 동안만 네 차례나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신고 당시에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해보면 환자의 거동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반복된 신고에 소방관들이 자제를 당부하자 이 남성은 그제서야 "병원에 가야 하는데 택시비를 아끼려 했다"고 실토했습니다.
현행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은 일부 비응급 환자의 구급 출동 요청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소방 당국의 입장입니다. 소방청 관계자는 "비응급 여부가 모호한 사례가 많고, 신고 내용만 듣고 판단했다가 상태가 악화되면 책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출동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각종 민원 역시 소방관들이 구급차 탑승을 거절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 소방관은 "이송이 불필요해 보여도 '왜 태워주지 않느냐'며 욕설을 하거나 나중에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어 결국 태워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에 따르면 2023년 인천에서는 샤워를 하느라 구급차 도착 6분 뒤 나타난 신고자에게 구급대원이 "구급차를 이런 식으로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이유로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습니다.
소방청 통계를 보면 2019년 81만 8191건이었던 미이송 출동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4년에는 120만7780건에 달했습니다. 구급차에 신고자를 태운다 해도 생명에 큰 위험이 없는 비응급 출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24년 119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된 환자는 180만7486명이었지만, 이 중 심한 부상·출혈 등 긴급 처치가 필요한 응급환자는 14.7%인 26만5488명에 불과했습니다.
미이송과 비응급 출동이 반복되면서 긴급 상황에 대응할 인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전국 소방서·119안전센터에 설치된 119구급대는 1455곳이며, 구급차는 총 1660대로 구급대 1곳당 구급차는 평균 1.1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반복적인 비응급 신고를 해도 신고자를 제재하거나 출동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법은 없는 상황입니다. 국회에 발의된 구급차 관련 법안들도 주로 병원 수용 체계 개선이나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구급차는 시민 생명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인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