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11일(수)

빅터 차 "중국의 경제적 강압, 이미 구조적 위협 단계에 진입"

중국이 무역과 시장 접근을 외교·안보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경제적 강압'이 이미 구조적 위협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단순한 통상 마찰을 넘어, 국가의 주권적 선택을 흔드는 전략적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진단입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지정학·외교정책 담당 소장이자 조지타운대 석좌교수는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최종현학술원(이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서 최근 출간한 저서 '중국의 무역 무기화'를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차 교수는 중국의 행태를 보호무역이나 일반적인 무역 분쟁과는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장 접근이나 가격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인권·영토 문제 등 정치적 선택을 바꾸기 위해 무역과 투자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설명입니다.


차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최소 600건 이상의 경제적 강압 사례를 통해 18개국과 수백 개 기업을 압박해 왔습니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관련 사례는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그는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례까지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며 "보복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기업과 정부가 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 빌딩에서 열린 최종현학술원 주최 특별강연에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지정학·외교정책 담당 소장 겸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 사진제공=최종현학술원


중국식 경제 압박의 특징으로는 비공식적이고 비공개적인 방식, 명확한 법적 근거의 부재,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어려운 수단 활용이 꼽혔습니다.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 중단, 일본에 대한 희토류 압박,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 제한 조치 등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됐습니다. 차 교수는 "중국은 제재를 문서로 남기지 않고 전화나 구두 지시로 전달해 책임을 회피한다"며 "이는 명백한 정치적 보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차 교수는 대응 전략으로 방어에만 머물러서는 한계가 있다며, 중국의 구조적 취약점을 역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엔 국제무역정보센터 자료를 인용해 중국이 다수 품목에서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특히 OLED 디스플레이 패널처럼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품목은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개별 국가는 취약할 수 있지만, 동맹과 연대하면 실질적인 억지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서방 국가들이 추진 중인 디리스킹, 즉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대해서도 차 교수는 한계를 짚었습니다. 그는 "한 공급망을 지키면 중국은 다른 공급망을 공격한다"며 "문제는 사후 대응이 아니라 사전 억지"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집단적 회복력'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특정 국가가 경제적 강압을 받을 경우 동맹국들이 공동 대응에 나선다는 신뢰를 미리 구축하자는 구상입니다.


차 교수는 유럽연합(EU)이 도입한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예로 들며 "이 제도 발표 이후 중국의 유사 행위가 줄어든 것은 억지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동북아와 인도·태평양에는 아직 이런 장치가 없다"며 "한국은 기술력과 공급망 내 위상이 높은 동시에 중국의 압박을 직접 경험한 국가로, 미국·일본과 함께 논의를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중 사이에서의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습니다. 차 교수는 "과거에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이 통용됐지만, 이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라며 "기업과 정부 모두 장기적으로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선택하는 흐름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사진제공=최종현학술원


차 교수는 집단적 회복력을 "무역 전쟁을 시작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한 억지 장치"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며 "동맹을 압박하는 전략이 아니라, 동맹을 결속시키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진제공=최종현학술원


사진제공=최종현학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