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여성이 23조원대 자산을 보유한 세계적 기업가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성공 비결로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제시했습니다.
지난 12일(현지 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후난성 샹샹 농촌 마을 출신 저우췬페이(56)가 세계적 기업가로 성공한 스토리를 보도했습니다.
저우췬페이의 성공담은 중국 이주 노동자들에게 큰 영감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우췬페이는 터치스크린 제조업체 렌즈테크놀로지 창업자로, 순자산 1100억 위안(약 23조 2364억 원)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됩니다.
후룬연구원이 발표한 2025년 중국 여성 기업가 순위에서 2위에 올랐습니다.
저우췬페이는 2015년 렌즈테크놀로지가 선전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면서 중국 최고 부호 여성으로 처음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자산은 약 500억 위안(10조 5620억 원)이었습니다.
현재의 성공과는 대조적으로 저우췬페이의 어린 시절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녀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는 산업재해로 시력을 부분적으로 잃고 손가락 하나를 절단당했습니다. 어린 저우췬페이는 가족 생계를 돕기 위해 채소를 심고 돼지를 키웠으며, 폐플라스틱을 주워 팔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입학 2년 만에 중퇴했습니다.
15세 때 저우췬페이는 일자리를 찾아 광둥성 선전으로 떠났습니다. 건설 현장 경비원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유리 공장 조립 라인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저우췬페이는 일과 후 남는 시간을 모두 회계와 컴퓨터 독학에 투자했습니다.
그 결과 작업반 관리자로 승진했고, 이어 공장 전체를 책임지는 관리자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1993년 저우췬페이는 친척 6명과 함께 침실 3개짜리 아파트를 임대해 창업에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실크스크린 인쇄업을 시작했다가 시계용 유리 제조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2003년 저우췬페이는 동업자와 함께 렌즈테크놀로지를 설립해 휴대전화용 유리 화면 생산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동업자가 회사를 떠나면서 기업은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전환점은 이듬해 찾아왔습니다.
글로벌 휴대전화 기업 모토로라가 "1m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유리를 제작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습니다. 이는 당시 전 세계 어느 유리 제조사도 구현하지 못한 기술이었습니다.
저우췬페이는 수개월간 연구에 매달린 끝에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해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운명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2007년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찾아왔습니다. 이후 렌즈테크놀로지는 애플 공급망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2015년 회사 상장은 저우췬페이의 자산을 크게 늘렸지만, 동시에 논란도 불러왔습니다. 저우췬페이가 한때 유부남의 내연녀였고, 그 남성의 자금으로 창업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입니다.
저우췬페이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루머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라며 "나는 유명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성공했을 때 너무 흥분하지 말고, 힘든 시기에 우울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우췬페이는 "2001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긴 옛 소련 작가의 소설책 한 권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강해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저우췬페이는 회사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애플에만 의존한다면 위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며 "지난 몇 년간 자동차와 로봇 등 다른 산업도 탐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7월에는 렌즈테크놀로지가 홍콩 증시에 상장했습니다.
저우췬페이는 "가난한 시골 소녀에서 조립 라인 노동자로,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상장까지 이룬 것은 행운이 아니라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며 "지금도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사회의 밑바닥에서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누리꾼들은 "특권 배경 없이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그녀가 너무 멋지다", "나는 2010년대에 그의 공장에서 일했다. 내 고향과 나는 저우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