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에서부터, 전국을 집어삼킨 '괴물 산불',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든 검찰청 폐지, 자본시장의 역사적 고점과 멈춰선 부동산 시장까지.
2025년 대한민국을 관통한 10대 뉴스는 한 해의 이슈를 넘어 시대의 방향을 가르는 분기점이었습니다.
정치권력의 교체와 제도 개편은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을 다시 묻게 했고, 대형 재난과 범죄는 국가의 대응 역량과 안전망의 한계를 드러냈다.
동시에 K-컬처의 세계적 확장과 외교·통상 무대에서의 존재감은 한국 사회의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격변의 한 해를 수놓은 주요 사건들을 되짚으며, 이 변화들이 남긴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를 차분히 재조명해 봅니다.
1. 헌정 질서의 대전환: 대통령 파면에서 이재명 정부 출범까지
2025년 한국 정치는 대통령 파면 사태를 겪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시도와 헌법 위반 논란 끝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파면됐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체포·구속된 건 헌정사상 처음입니다.
이후 헌법 절차에 따라 6월 3일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9.42%의 득표율로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던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내란 극복을 첫 번째 사명으로 제시했습니다.
2. 재난 국가의 민낯: 전국 동시다발 산불이 드러낸 안전망의 한계
2025년 봄, 경북 의성군 안평면과 안계면 두 곳의 야산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고온·건조한 날씨 속에 강풍을 타고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5개 시·군을 덮쳤습니다.
이른바 '괴물 산불'로 불리던 이 산불에 정부는 국가 재난 사태를 선포했습니다. 헬기 1200여 대와 장비 8300대, 7만여 명의 진화 인력이 투입된 끝에 진화됐습니다. 산불이 발생한 후 149시간 만이었습니다.
이 산불로 여의도 면적의 35배에 달하는 9만 9490ha의 산림이 잿더로 변했습니다.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입니다.
또한 26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치는 등 인명 피해와 3만 6674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재산 피해액도 1조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3. 사법 권력의 재편: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 시대의 개막
2025년 한국 사법 체계는 근본적 변화를 맞았습니다. 수사와 기소 기능을 분리하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서 기존 검찰 중심의 수사 구조가 재편됐습니다.
이에 따라 범죄 수사 역할을 해온 검찰청은 78년 만에 공식적으로 폐지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개정안의 핵심은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법무부 장관 산하에 '공소청'을 두고 중되 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신설하는 내용입니다.
개정안은 내년 9월부터 시행됩니다. 정부는 제도 개편에 따른 혼선을 줄이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을 구성하고, 검찰청 폐지를 포함한 형사사법 체계 개편의 보완책을 논의 중입니다.
4. 자본시장의 변곡점: AI 반도체 열풍이 연 코스피 4000시대
2025년 국내 증시는 인공지능 산업 성장 기대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비상계엄의 여파로 올해 초 2200선까지 하락했던 코스피 지수는 반도체와 AI 인프라 관련 기업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집중되며 처음으로 4000선을 넘어섰습니다.
정부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정책과 글로벌 기술 투자 흐름도 상승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만 대형주 중심의 상승으로 체감 경기와의 괴리, 변동성 확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80원을 넘어서며 경제 전반의 불안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5. 권력 감시의 시험대: 정국을 뒤흔든 3대 특별검사
12·3 내란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막혀 있었던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그리고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특검으로 인해 구속이 취소됐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다시 재구속됐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이 법정에 섰습니다.
'채 상병 특검'을 통해 수사 외압이 윤 전 대통령임을 확인하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구속기소 해 순직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김건희 특검은 김 여사의 금품 수수 등 매관매직 범죄를 밝혀냈습니다.
6. 문화 패권의 확장: '케이팝데몬헌터스'가 증명한 K-컬처의 세계화
2025년에도 한국 문화 콘텐츠는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음악 분야에서 다수의 작품이 해외 플랫폼과 차트에서 성과를 거두며 K-콘텐츠의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
특히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무당과 저승사자를 모티브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서울을 재조명하면서도 K-팝 아이돌을 다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넷플릭스 콘텐츠 중 처음으로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돌파했고,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 OST '골든' 등을 작곡한 한국계 미국 작곡가 겸 가수 이재(EJAE)가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오는 2026년 2월에 열리는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후보 명단에서 5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됐습니다.
내년 1월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3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주제곡 '골든'은 3월 '제98회 아카데미상' 주제가상 예비 후보에 들었습니다.
7. 무역 질서의 균열: 트럼프 귀환과 한미 관세 협상의 긴박한 타결
지난 10월 29일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중에 한국과 미국이 극적으로 관세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같은 15% 관세를 적용받는 3500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1500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마스가 프로젝트'가 협상의 핵심 카드로 작용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 내 조선업 투자를 제안하면서 미국의 상호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관세도 25%에서 15%로 낮추는 타협안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건조를 승인했습니다.
8. 외교 무대의 재등장: 천년 고도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에서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디지털 전환과 지속 가능한 성장, 지역 협력 강화를 주요 의제로 제시했습니다.
회의 기간 다자 정상 외교가 활발히 이뤄졌고, 한국의 외교적 존재감도 부각됐습니다. 경주는 국제회의 개최 역량과 문화 관광 자원을 동시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기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만나 '치맥'을 즐기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도체와 모빌리티, 인공지능(AI)를 아우르는 이 '삼각 동맹'이 한국을 AI 주권 국가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9. 초국경 범죄의 그늘: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타운'의 실체
지난 8월 8일 캄보디아 현지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동남아 지역에 거점을 둔 범죄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며 사회적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사건 이후 캄보디아로 떠난 한국인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전국에서 빗발쳤습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해외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속아 캄보디아로 향한 것으로 알렸습니다.
이후 한국인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과 사기 범죄뿐 아니라, 현지에서의 강제 노동과 감금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정부는 지난 10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로 파견해 현지 당국에 구금이 됐던 한국인 64명을 송환했습니다.
아울러 캄보디아와 합의해 11월부터 한국인 대상 범죄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고, 한국인 51명 검거 및 감금 중이던 20대 남성을 구출했다.
10. 디지털 신뢰의 붕괴: 거대 기업 개인정보 유출이 남긴 경고
2025년 주요 기업과 플랫폼에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며 사회적 파장이 컸습니다. SK텔레콤을 시작으로 KT와 롯데카드, 쿠팡 등을 상대로 한 해킹 사고가 잇따라 터졌습니다.
SK텔레콤은 약 2300만 가입자의 유심 정보가 해킹당했고, KT 가입자 일부는 불법 기지국을 이용한 신종 해킹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쿠팡 역시 최근 중국인 직원이 3370만명의 사용자 정보를 접속, 이를 유출해 기업의 보안 책임과 관리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정부는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과징금 상향과 감독 강화 방침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