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과 물가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세청이 시장 교란 행위를 통해 부당 이득을 챙긴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실시합니다. 이번 조사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원화 약세를 빌미로 과도한 가격 인상을 단행하거나 용량을 줄여 사실상 물가를 올리는 '슈링크플레이션' 등 불공정 행위를 벌인 업체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23일 국세청은 가격 담합과 독과점 행위, 할당관세 편법 이용, 슈링크플레이션, 외환 부당 유출 등을 통해 물가 불안을 부추긴 31개 업체에 대해 이달 중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 업체의 전체 탈루 혐의 금액은 약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첫 번째 조사 대상인 독과점 기업들은 가격 담합과 시장 지배력 남용을 통해 정상적인 수요와 공급 원리를 벗어난 가격 책정으로 동종업계 대비 높은 초과 이윤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업체는 담합 업체들과 사다리 타기, 제비 뽑기 등으로 낙찰 순번을 정해 '나눠 먹기식 수주'를 진행하면서 들러리 업체에게 입찰 포기 대가로 공사 계약 금액의 10%에 해당하는 사례금을 지급하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수취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다른 업체는 수도권 소재 호텔을 운영하면서 사주 자녀가 최대 주주인 특수관계법인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건물을 임대해 이익을 나눠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두 번째 조사 대상 할당관세 편법 이용 수입 기업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농축수산물 등에 적용되는 저율 관세 혜택을 받으면서도 이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아 이익을 극대화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사주 자녀가 운영하는 특수관계법인을 유통 과정에 개입시켜 관세 감면을 받은 원재료를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이익을 나눈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세 번째 조사 대상인 슈링크플레이션 프랜차이즈는 치킨, 빵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외식업에서 가격은 유지하면서 중량만 줄이는 용량 꼼수를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업체는 원·부재료 판매 업체와 직거래가 가능함에도 계열 법인을 거래 단계에 끼워 넣어 원재료를 시가보다 비싸게 매입했으며, 사주 일가 소유 가맹점 인수 시 권리금을 과다하게 지급해 이익을 분산시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다른 업체는 대표이사가 점주로 있는 가맹점의 가맹비와 인테리어 등 창업 관련 비용을 회사가 대신 부담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어 법인 신용카드로 골프장 이용과 명품 구입 등 호화생활을 누리면서 이를 비용으로 처리해 소득을 축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네 번째로 외환 부당 유출 기업들은 법인자금을 편법으로 유출해 고가의 해외 자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외환 수요를 증가시키거나 외환을 국외로 부당하게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들은 법인자금으로 자녀 해외 유학을 넘어 가족 전체를 이주시키고 고액 부동산, 고급 콘도, 호화 요트 취득 등 사치 생활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외국 국적을 보유한 채 국내에서 다수 법인을 운영하는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이들은 수출 대금 등 사업 활동 대가를 외국인 지위를 이용해 개설한 대외 계정을 통해 수취하고 개인소득세 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를 통해 물가·환율 상방압력을 유발하는 등 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면서 정상적인 경제활동 범위를 넘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시장 교란행위 탈세자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시장지배력 남용 등 변칙적 수법으로 시장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겠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