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때 레미콘 믹서가 돌아가던 자리였던 옛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가, 이제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다시 그리는 무대로 바뀝니다. 삼표그룹이 이곳에 최고 79층 규모의 미래형 업무복합단지를 조성하는 '성수 프로젝트'를 본격화했습니다. 계획대로 완공되면 롯데월드타워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초고층 건물이 될 전망입니다.
지난 22일 삼표그룹은 성수 프로젝트를 업무·주거·상업 기능을 결합한 대규모 복합개발로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레미콘·시멘트 중심의 건설 기초소재 기업에서 종합 디벨로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사업으로, 단순 부지 개발을 넘어 직접 개발·운영까지 염두에 둔 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습니다. 서울시는 최근 제19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고 '서울숲 일대 지구단위계획구역 및 삼표레미콘 특별계획구역 세부 개발계획 결정안'을 수정 가결했습니다. 1977년 가동을 시작해 2022년 철거된 성수 공장 부지를 초고층 복합시설로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개발 구상은 서울시 정책 방향과 맞물립니다. 삼표그룹은 서울시 사전협상제도를 통해 해당 부지를 업무시설 비중 35% 이상, 주거시설 40% 이하의 복합단지로 개발할 계획입니다.
성수동을 미래형 오피스와 혁신기업 중심지로 키우려는 서울시의 방향에 맞춰, 주거 비중이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업무 기능을 앞세운 구조입니다. 이와 함께 서울숲 일대 교통 혼잡 해소를 위한 기반시설 개선을 추진하고, 스타트업 지원 공간인 '유니콘 창업 허브'를 도입한다는 구상도 포함했습니다. 성수 부지와 서울숲을 잇는 입체 보행공원 조성 계획까지 더해졌는데, 이는 개발이 '내부 시설'에만 머물지 않고 보행 흐름과 도시 연결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번 사업은 '건축 혁신형 사전협상' 대상지로 선정된 데 이어 '도시건축 창의혁신디자인'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에 따라 입체 보행 데크 구간에는 건폐율 최대 90% 완화, 용적률 104%포인트 추가 등 인센티브가 적용됩니다. 초고층 개발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공간 효율과 동선 설계인데, 서울시가 인센티브로 설계 자유도를 넓힌 만큼 삼표로서는 상징성과 사업성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는 여지가 커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삼표그룹은 실행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담 조직을 꾸리고 전문 인력도 보강했습니다. 지난 2월 글로벌 부동산 개발 경험을 갖춘 로드리고 빌바오 사장을 영입했고, 롯데월드타워 건설을 총괄한 석희철 전 롯데건설 사장을 성수 프로젝트 건설본부장으로 선임했습니다. 설계와 인허가를 넘어 시공·공정 관리까지 한 번에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인사에서 드러납니다.
성수만 바라보는 것도 아닙니다. 삼표그룹은 서울 DMC 수색 프로젝트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서울 은평구 증산동 일대에 지하 5층부터 지상 36층까지 3개 동 규모의 주상복합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합니다. 이곳에는 삼표그룹 신사옥 'SP 타워'가 들어서며 주요 계열사들이 순차 입주할 계획입니다. 두 프로젝트에는 삼표가 자체 개발한 저탄소 특수 시멘트 '블루멘트(BLUEMENT)'와 특수 콘크리트 'VAP'를 적용해 기술 기반 차별화도 동시에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업계에서는 삼표의 연이은 대형 복합개발을 전통적인 건설 기초소재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전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레미콘과 시멘트가 경기 변동에 민감한 사업이라면, 개발과 운영은 장기적으로 자산 가치와 현금흐름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성수 프로젝트가 단순한 랜드마크 경쟁이 아니라, 삼표가 스스로의 업을 바꾸는 실험대가 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빌바오 사장은 "성수 프로젝트는 서울 도심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그룹의 사업 확장을 이끌 중요한 이정표"라며 "도시와 시민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난관은 남아 있습니다. 초고층 복합개발은 '높이'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서울숲 일대 교통 혼잡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지, 공원 인접 초고층에서 반복돼 온 일조·조망·바람길 같은 환경 이슈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여기에 금융, 시공·공정, 준공 이후 운영까지 전 과정을 흔들림 없이 끌고 갈 역량이 과연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해소해야 합니다. 삼표의 이미지는 여전히 '건설기초소재 기업'에 머물러 있습니다. "초고층 빌딩을 '랜드마크'로 조성할 수 있는 종합 디벨로퍼의 자질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아직 '물음표'입니다.
이 두가지 의문을 해소하며, 도시가 불편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까요. 당장 이겨내야 할 '인허가'부터 완성까지 시장이 끝까지 검증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