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들에게 영어 단어 암기는 오랜 기간 시험을 위한 필수 과제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아마도 학창시절부터 반복된 단어 시험의 영향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단어 하나하나에는 언어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 맥락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특히 어원을 함께 고려하면, 단어의 유래와 변천사, 그리고 시대적 흐름까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간 『어원 인문학: 어휘의 숲에서 어원의 길을 찾다』는 단어의 깊이를 되찾아주는 특별한 접근을 시도합니다. 이 책은 단어의 기원을 깊이 탐구하여 언어를 생동감 있는 인문학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밑바탕에 어떤 세계관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세심하게 보여줍니다.
저자 김성현은 일상에서 빈번하게 마주치는 영어 단어들의 숨겨진 어원적 의미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해설합니다.
ecstasy(황홀경), suspire(한숨을 쉬다), arctic(북극), chronicle(연대기), mortgage(몽타주), Mediterranean(지중해), avatar(아바타), cliché(클리셰) 등 친숙한 단어들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 앞에 나타납니다.
'황홀경'을 의미하는 ecstasy는 원래 '자신으로부터 벗어남'을 뜻하는 종교적 용어였으며, mortgage에는 '죽음'을 나타내는 mor-가 포함되어 있어 빚을 상환하지 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arctic이 '곰(arkto)'에서 유래했다는 점, cliché가 금속 활자의 '딸깍' 소리에서 나온 단어라는 사실 또한 언어와 인간의 생활 세계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증명합니다.
김성현 저자는 단어의 어원을 탐구하는 작업이 단순한 지식 축적을 넘어서 인간의 사유를 해석하는 철학적 행위임을 역설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언어의 지층에서 인간 조건의 흔적을 관찰했고, 프로이트는 '두려운 낯섦(Unheimlich)'이라는 개념을 단어의 어원을 통해 해명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진리(aletheia)'의 어원적 의미인 '비은폐성(unconcealment)'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재고찰하려 했습니다. 이들이 언어의 뿌리에서 철학의 씨앗을 발견했듯이, 어원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한 방식을 기록한 사유의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 교육 현장에서 20년 이상 학생들을 지도해 온 저자는 단어를 '암기해야 할 목록'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문화적 주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단어는 그 단어가 탄생했던 시대의 인간관, 자연관, 세계관을 그대로 보존한 역사적 기록물입니다. 어원을 알면 단어가 보이고, 단어가 보이면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이 달라집니다.
『어원 인문학』은 영어 단어를 다시 '사고의 단위'로 복원시키는 저작입니다. 단어를 암기하는 대신 단어 속에 감춰진 문화와 신화를 읽게 하며, 언어의 지층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의 내면과 시대정신에 도달하게 됩니다.
언어를 통해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와 암기의 대상이었던 단어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은 학습자에게 일종의 '사유의 지도'를 제공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