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5일(금)

김장철 앞두고 국민 식재료 '배추' 비상 걸렸다... 농민들 "도저히 수확 못 해"

김장철을 앞두고 전국 배추 농가들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길게 이어진 가을장마로 인한 세균성 병해가 배추밭 곳곳에서 확산되면서 일부 농민들은 아예 수확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KBS는 강원도의 가을배추 재배지를 취재해 현장 상황을 보도했습니다. 수확을 앞둔 배추밭에서는 누렇게 시든 배추들이 곳곳에서 발견됐으며, 속이 단단하게 차올라야 할 시기임에도 뿌리가 허옇게 드러난 채 밭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이는 세균 감염으로 조직이 썩어 들어가는 배추 무름병이 원인으로 확인됐습니다.


배추 재배 농민 김재중 씨는 "그냥 갈아엎어야지 뭐 방법이 없다. 전부 다 자포자기 상태"라고 절망감을 토로했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은 배추조차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상품 가치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 google ImageFx


김익중 씨는 피해 규모에 대해 "어떤 밭은 거의 70~80% 피해를 봤고, 바닥이 아주 물컹물컹할 정도로 돼 있기 때문에 배추가 크질 못하고 이렇게 다 썩음병에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피해의 근본 원인은 이례적인 가을장마였습니다. 배추 생육의 핵심 시기인 9월과 10월, 강원 영서지방에는 30일 가까이 비가 내렸습니다.


전남 해남의 경우 올해 9~10월 강수일수가 29일로 최근 6년 사이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강수일수 21일과 비교하면 거의 2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강수량 자체는 올해 297.7mm로 지난해 454.9mm보다 적었지만, 땅이 마를 사이 없이 지속적으로 비가 내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농촌진흥청 제공


가을장마 이후 조성된 다습한 환경에서 무름병이 확산되면서 강원도내 10~20%의 배추 농가가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 9월 평균 기온은 23.5도로 평년보다 1.7도 높았고, 강수일수는 19일로 지난해보다 9일 많았습니다. 이러한 고온 다습한 환경이 지속되면서 세균성 병해인 배추 무름병이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전국 가을 배추의 25%, 겨울 배추의 65%를 담당하는 최대 주산지 해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30년 넘게 배추농사를 지어온 김효수 씨는 KBC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피해는 처음"이라며 "(배추) 뿌리가 없다. 썩어버려 가지고...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피해가 심하다. 저희 같은 경우는 50%도 수확을 못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영동 해남군 절임배추 생산자협회장은 "9월 계속 비가 내리고, 날이 흐렸다. 배추 뿌리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겉 잎만 자라게 된 거다. 또 흐린 날이 많다 보니까 병이 창궐하게 된 것"이라고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농촌진흥청 제공


전라남도는 해남의 배추 재배면적 5000여ha 중 3%인 150ha에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현장 농민들이 체감하는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큰 상황입니다.


충북 괴산군은 27일 9~10월 잦은 강우로 발생한 가을배추와 콩 피해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농업재해로 공식 인정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군의 긴급 현장 조사 결과 10월 23일 기준 가을배추 165ha, 콩 58ha 등 총 223ha에서 농작물 피해가 확인됐습니다. 불정면과 청천면 등 저지대 재배단지에서 잦은 호우로 작물 생육 부진과 병해 발생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괴산군은 11월 3일까지 피해 농가를 대상으로 정밀 피해 조사를 진행하고, 이후 재난지원금 지급과 복구 지원을 본격 추진할 계획입니다.


뉴스1


송인헌 군수는 "기상이변이 상시화된 상황에서 농업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전국배추생산자협회는 지난 22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10월 잦은 비로 밭이 진흙탕이 돼 트랙터도 들어가지 못했다"며 "결구기에 비가 이어지면서 병해와 도복 피해가 속출했다"고 호소했습니다.


협회는 "주요 산지의 출하량이 평년 대비 30~40%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배추가격 급등은 잦은 비로 인한 생산 차질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배추는 9월 생육기와 10월 수확기를 거치며 결구가 형성됩니다. 이 시기에 잦은 비는 밭을 포화 상태로 만들어 배추의 뿌리 호흡을 막고, 배추 내부에 수분을 과도하게 축적시켜 무름병 발생을 촉진시킵니다.


무름병은 잎과 뿌리가 썩어 물러지는 세균성 병으로, 수확 직전까지 진행돼 피해를 막기 어려운 특성이 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 google ImageFx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기상이 평년보다 더 나빠 배추 수확이 지난해보다 힘든 것으로 파악됐다"며 "배추는 9월이 생육의 핵심, 10월이 수확기이기 때문에 이 시점의 기상이 결정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9~10월 잦은 강우로 배추밭 과습이 이어지며 병해 발생이 늘고 있다"며 배수로 등을 정비해 물빠짐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올해는 유독 배추값이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도 배추 한 포기가 7000원까지 올랐습니다. 폭염과 폭우가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이상기후가 가격을 폭등시켰습니다. 당시 정부는 배추값 안정을 위해 정부 비축물량을 방출하고 고랭지 배추 출하를 서둘러 소매가를 안정시켰습니다.


김장 수요가 폭증하는 가을배추마저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량 급감으로 가격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지난해에도 가을배추가 9월 폭우로 재배면적이 크게 줄면서 가격이 뛰었지만, 올해는 10월 수확기에 잦은 비로 무름병이 발생해 지난해보다 시장 여파가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농진청 관계자는 "최근들어 하나의 요인이 아닌 전체적인 기상 여건이 변하고 있어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특히 가을철 잦은 비와 낮은 일조량이 배추 생육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김장철 수급 불안정에 대비해 비축 물량을 확보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입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26일 배추 작황을 점검한 뒤 "10월 마지막주부터는 기온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돼 대비가 필요하다"며 "이상기상에 대응해 생육 관리 지원을 강화해 농민이 김장배추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은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