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5일(금)

[신간]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검사가 바라본 법정 너머의 인간 이야기


"삶의 비극 앞에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일은 종종 무력합니다. 아무리 유죄를 입증하고 형을 집행한다 하더라도 매번 낯선 얼굴로 찾아오는 슬픔을 다 가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애를 써보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20년 경력의 '외곽주의자' 검사 정명원이 신작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에서 전하는 깊은 통찰입니다.


사진 제공 = 한겨레출판사


그는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적 시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이 책에 담아냈습니다.


정명원 검사는 tvN '유 퀴즈' 출연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전작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은 지난 2021년 11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시민 작가가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추천한 책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당시 유시민 작가는 "사람다운 마음을 가진 검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이 책을 추천했습니다. 공판 분야 국내 유일 블랙벨트 검사로 불리는 정명원의 신작은 전작에서 던진 '사람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데 인간에 대한 상상력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켰습니다.


법정 너머 인간 삶의 복잡한 결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은 '검찰 개혁'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지금, 인간과 법에 대한 다층적인 고민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형사법의 세계가 단순히 유죄와 무죄로만 나뉘지만, 실제 인간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복잡다단한 결들이 얽혀 있음을 강조합니다.


정명원 검사는 틀에 박힌 공소장 이면과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으려는 자신의 노력을 책에 담았습니다.


그는 탐욕, 무책임, 이기심, 체념과 합리화가 섞인 세계에서 상흔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책에는 여러 사례가 등장합니다.


친아버지 살인미수죄로 구속되었으나, 자식을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통곡 앞에 존속살해예비죄 대신 어머니에 대한 특수협박죄로 기소를 변경한 사건, 두부 공장에서 손가락 마디가 잘린 채 수십 년간 고되게 일했으나 결국 횡령죄로 기소된 공장장의 가슴 아픈 이야기,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가해자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 오히려 돈이 든 합의서를 내미는 피해자 가족의 선처 일화 등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악의 얼굴도, 정의의 얼굴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며 알게 된 진실을 이 책에 담았다고 말합니다.


오은 시인은 "그동안 이 시대의 검사를 흡사 칼을 다루는 검사처럼 느껴왔다면, 정명원의 책을 읽으면서 검사에 대해 남아 있는 편견마저 산산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며 이 책에 추천의 말을 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