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인 1976년 8월 18일.
언제나 긴장감이 감돌던 한반도를 '전쟁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을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라고 부르는, 북한군의 무자비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이 사건의 시작은 고작 미루나무 한 그루였다.
당시 주한미군 장교들은 공동경비구역 초소를 정비하던 중 미루나무 한 그루가 초소 시야를 가린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곧장 가지치기에 나섰다.
이때 북한군은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이유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중지하라고 압박했다.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군사분계선으로 나뉘어 있지만, 당시에는 말 그대로 '공동경비' 구역이었다. 같은 공간에 남한군과 미군 그리고 북한군이 동시에 주둔하고 있었다.
북한 박철 중위는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죽인다"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미군 장교들은 위협에 굴하지 않았고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미군의 계속된 가지치기에 분노한 박철 중위는 부하들에게 "죽여라"를 외쳤다. 북한군들은 미군 장병들을 무차별 폭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땅에 떨어져 있던 도끼를 집어 아서 보니파스(Arthur G. Bonifas) 대위의 머리를 찍기까지 했다.
보나파스 대위와 함께 있던 마크 배럿(Mark T. Barret) 중위까지 현장에서 참혹하게 살해했다.
분노한 미군은 당장 '데프콘 3'을 발동시켰다. 미국 정부는 '처절한 응징'을 예고했다. 더 이상 위신이 깎여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은 판문점 사건의 시발점이 된 '미루나무'를 자르고, 이를 계기로 북한군이 다시 추가 도발을 하면 전쟁을 일으키자는 작전을 세웠다.
전쟁에 대비해 미루나무 주변에는 한미 양국 군의 호송차량 23대, 미군 공병대원 16명, 이들을 호위하는 미군 1개 경비소대와 64명의 한국군 특전사 부대가 동원됐다.
상공에는 미군 헬기 20대를 포함, 코브라 공격용 헬기, B-52 폭격기, F-111 전폭기가 등장했고, 해상에는 항공모함 미드웨이호, 휴전선 인근에는 한국군 보병과 기갑부대, 포병들이 대기했다.
한국군도 전투 준비에 나섰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지시를 내려 육군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 대원들로 구성된 64명의 결사대를 만들어 미루나무 근처에서 북한군의 동향을 살피게 했다.
UN, 미국, 한국이 모두 전쟁을 준비 중일 때 당시 소련과 중국은 조용히 있었다. 단지 "변명의 여지가 없이 북한의 잘못"이라는 입장이었다.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은 북한 김일성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했냐"며 사건 수습에 나섰다.
결국 김일성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유명을 표명했다. 미국이 이것을 받아들이면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후 판문점에는 콘크리트로 확실하게 나누어진 남북 경계가 생기게 됐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일 그때 북한 측이 조금도 자세를 굽히지 않았더라면 2차 한국전쟁, 아니 3차세계대전이 발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사건을 보고받은 뒤 철모와 군화를 즉시 준비시켰다고 한다.
다음날 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그 유명한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게 약"이라는 연설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