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월)

조선인 최초 '일어+중국어+필리핀어' 3개 국어 마스터해 조선왕조실록에 이름 올린 생선 장수

생선 장수에서 통역사가 된 문순득 / 해양수산부


[인사이트] 임기수 기자 = 글로벌 시대라고 불리는 21세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영어 혹은 제2외국어 하나쯤을 완벽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경쟁력이 된다.


비교적 외국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지금도 무려 3개 국어를 마스터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외국인을 만날 기회도 흔치 않고 특히 평민은 문자를 익힐 기회가 없던 19세기 조선 시대에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필리핀어까지 총 3개 국어를 마스터해 통역사가 돼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을 올린 생선장수가 있다.


바로 조선인 최초 필리핀어 통역사 생선 장수 문순득이다.


홍어를 사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나는 문순득 재연한 모습 / YouTube 'KBS역사저널 그날'


문순득은 조선 후기 전라남도 신안군 근처에서 홍어를 팔던 생선장수였다. 그러던 1801년 12월 어느 날, 동료들과 흑산도에 홍어를 사러 갔다 오는 길에 풍량을 만나게 돼 한 섬에 불시착하게 됐다.


그 섬은 바로 지금은 오키나와라고 불리는 '유구국'이었다. 다행히 현지인들은 문순득을 비롯한 표류자들을 잘 보살펴주었다.


이때 문순득은 현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일본 사투리 중 하나인 류큐어를 배우게 됐다.


현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문순득은 조선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중국으로 가는 유구국의 조공선에 탑승해서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유구국에 온 지 7개월여 만에 문순득과 일행들은 중국으로 향하는 배에 탑승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높은 파도를 만나 외딴 섬에 표류하게 됐다.


문순득이 거쳐 온 나라들 / tvN '책을 꼭 읽어 드립니다'


이번에 문순득이 표류하게 된 곳은 바로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필리핀의 루손섬 '여송'이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있던 일행들과 흩어져 홀로 남은 문순득 여송에서 홀로 9개월을 지내게 된다.


문순득은 여송에서도 필리핀 언어인 여송어를 열심히 배웠다. 언어를 빨리 터득한 덕분에 그는 그곳에서 돈을 벌고 관광도 하며 다양한 체험을 하며 지냈다. 또 그곳에서 서양 국가의 문물도 경험했다.


이후 마침내 1805년 1월, 문순득은 4년 만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 신안군으로 돌아오게 됐다.


문순득이 고향으로 돌아왔던 시기, 마침 신안도 근처 흑산도에는 실학자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유배를 내려와 있었다. 우연히 정약전과 만나게 된 그는 정약전에게 유구국과 여송에서 표류했던 이야기를 둘려줬다.


문순득의 표류기를 담은 표해시말 / YouTube 'EBS 컬렉션 - 사이언스'


정약전은 문순득의 경험담으로 책을 만들어 냈고 이것이 바로 '표해시말'이다.


표해시말에는 문순득의 표류 일정과 함께 유구, 여송, 마카오의 풍속과 언어 등이 체계적으로 담겨 있다. 특히 책 끝에는 112개의 한국어 단어를 한자로 적은 뒤 이를 일본어 81개와 필리핀 54개로 바꿔 적은 부분이 있는데 이는 언어학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다고 전해진다.


평범한 생선 장수였던 문순득이 드디어 통역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 사건이 발생한다. 1809년 국적 불명의 외국인들이 제주도에 표류하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들이 청나라 사람일 것으로 생각해 이들은 청나라로 보냈지만 청나라에서도 자국 사람이 아니라며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냈고 이들은 꼼짝없이 9년 동안 제주도에 머물게 됐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문순득의 기록 / YouTube 'KBS역사저널 그날'


그쯤 4년 만에 여러 나라를 표류하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문순득의 소식이 조정에 전해진다. 문순득의 표해시말에서 묘사된 여송인의 모습과 제주도에 표류하고 있는 국적 불명의 외국인들이 비슷하다는 것을 안 조정에서는 그를 제주도로 보냈다.


제주도로 내려간 문순득은 이들이 여송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문순득이 여송어를 훌륭하게 통역한 덕분에 이들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것이 문순득이 조선인 최초 필리핀어 통역사로 활약하는 순간이었다.


문순득은 이 공을 인정 받아 비록 명예직이긴 하지만 고위직으로 분류되는 가선대부 종2품 공명첩의 하사 받게 된다.


한낱 평범한 생선 장수였던 그가 어마어마한 벼슬을 얻게 된 것이다.


여러 일화를 볼 때 문순득은 비범한 기억력과 외국어 습득 재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자를 익힐 기회가 적고 외국과의 교류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조선 시대의 평민이 그랬다는 것이 더 놀라운 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풍량에 떠밀려 외딴곳에 표류하게 된 위기를 기회를 바꾼 문순득은 지금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